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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힘? 북한 9ㆍ9절 행사에 시진핑 불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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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의 정권 수립 기념일인  9ㆍ9절에 방북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대신 중국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임위원장 겸 정치국 상무위원을 특사로 파견키로 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4일 “리 위원장이 시 주석의 특별대표 신분으로 당ㆍ정 대표단을 이끌고 8일 북한을 방문해 북한 건국 70주년 기념활동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공산당 대외연락부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북한 정부의 초청에 의한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리 위원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면담하고 시 주석의 친서를 전달할 것임을 시사했다.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회담장인 카펠라 호텔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위해 만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제공)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회담장인 카펠라 호텔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위해 만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제공)

중국이 서열 3위인 리 위원장을 파견키로 한 것은 고심의 산물로 평가된다. 시 주석 본인은 가지 않되 과거 사례에 비해 축하 사절의 서열을 높이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한 때 중국 당ㆍ정에서 시 주석의 방북도 검토된 것으로 안다”며 “시 주석이 9ㆍ9절에 가지 않기로 한 것은 최근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없고 북ㆍ미 관계의 교착 등의 변수를 고려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ㆍ중 관계에 밝은 또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열병식을 개최할 예정인데 시 주석이 김 위원장과 나란히 서서 인민군을 사열하는 모습이 외부로 비춰지는 건 중국으로서도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 장면이 연출될 경우 중국이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에서 확실하게 북한 편에 선다는 메시지를 줘 중국의 배후 역할에 대한 의심이 깊은 미국을 더욱 자극해 미ㆍ중 관계의 악재가 될 수 있어서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무역과 관련해 중국에 대한 훨씬 더 강경한 입장 때문에 그들(중국)이 예전만큼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며 “폼페이오 장관은 아마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해결된 이후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로 예정됐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을 취소하며, 중국 책임론을 거론한 것이다. 중국이 북·미 관계에 참여하고, 북한의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취지여서 사실상 시 주석 방북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의 전직 고위 외교 당국자는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 8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군중대회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꽃다발로 당 마크 등의 거대한 선전문구를 만들어내는 평양시민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지난 8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군중대회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꽃다발로 당 마크 등의 거대한 선전문구를 만들어내는 평양시민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시 주석의 9·9절 불참은 북한을 배려한 측면도 있다. 시 주석은 앞서 2015년 노동당 창건 70주년 때에는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을 특사로 파견하고 친서를 전달했다. 이번에는 서열을 높이면서 시 주석의 신임이 두터운 측근인 리 위원장을 파견함으로써 북ㆍ중 관계를 과거보다 더 중시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 본인의 9ㆍ9절 방북은 무산됐지만 연내 방북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 주석의 방북은 3월 하순 김 위원장의 1차 방중 때 이뤄진 북ㆍ중 정상회담 합의 사항이다. 당시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의 초청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의 평양 방문이 이뤄지면 2008년 국가 부주석 시절 방북한 이래 10년 만이며 집권 후로는 처음이다. 시 주석의 방북 시점은 북ㆍ미 관계와 비핵화 진전 등 한반도 정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분석이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서울=정용수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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