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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평 쪽방에 PC 12대로 매월 800만원 수입 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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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1일 오전 10시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의 반지하 주택. 4평 남짓한 방에 12대의 PC가 빼곡히 놓여 있다. 12개의 화면엔 모두 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떠 있다. 최모(24)씨 등 세 명은 한 명당 4대의 PC를 관리하며 12시간째 리니지를 하고 있다. 밤을 꼬박 새워 눈이 충혈된 최씨 등은 가상공간에서 괴물을 사냥해 650만 아데나(리니지의 화폐단위)를 모았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밤새 10만원가량을 번 셈이다. 잠시 뒤 이모(22)씨 등 낮 근무조(12시간 근무) 세 명이 교대했다. 이씨는 40대 사업가가 위탁한 캐릭터를 두 달째 전담해 키우고 있다. 이 사업가는 자신의 게임 캐릭터를 강하게(5레벨→55레벨) 키워 달라고 부탁했다. 이씨는 "다음 주말께 요구사항을 완수하고 캐릭터를 인계하면 220만원이 회사로 입금된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이나 게임머니(아데나)를 대량 수집한 뒤 게임 사용자에게 되팔아 돈을 버는 '게임 작업장'의 모습이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은 온라인 게임의 현금거래 시장 규모를 1조원으로 추산한다. 온라인 게임 거래는 '산업'으로 분류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암시장이다 보니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는다.

본지는 온라인 게임의 현금거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암시장에서 아이템 공장 역할을 하는 '작업장'을 1박2일 동안 체험했다. 각종 아르바이트 알선 사이트에 나온 '작업장 직원 모집' 광고를 통해 '취업'했다.

◆ 작업장의 사람들=의정부 작업장의 사장 장모(36)씨는 1월 리니지 작업장을 차렸다. 원래 식당을 운영했지만 여의치 않자 평소 즐겨하던 리니지 쪽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현재 장씨를 포함해 직원 6명이 하루 2교대로 24시간 일한다. 현재 월 800만원의 매출에 인건비.전기료 등을 제외하고 500만원의 수익을 올린다. 장씨의 작업장은 이 분야에서 영세업자 규모다. 그는 "20명 정도의 직원을 두고 월 5000만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급여는 숙식 제공에 월 20만원 수준. 언뜻 '노동력 착취'로 보이지만 의외로 별 불만은 없다.

게임광인 직원 김모(25)씨는 "좋아하는 게임을 실컷 하며 일도 배울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교 시절부터 게임에 빠져 전국 규모 대회에만 여섯 차례 나갔다. 그는 "여기서 돈을 번다는 것보다 사업 노하우를 익혀 대규모 작업장을 꾸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오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도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종종 작업장을 찾는다고 한다. 기자는 밤 근무조에 속해 밤새 리니지 게임을 했는데 동이 틀 무렵엔 팔이 저려 마우스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 어떻게 돈 버나=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통해 현실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정상적으론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현금을 주고 게임 아이템.머니를 구입한다.

작업장은 이런 게임 이용자의 속성에 편승한 사업. 최강의 아이템은 가격이 최고 300만원에 달한다. 게임머니는 1000만 아데나당 17만~18만원을 받고 판다. 아이템 거래는 주로 전문 중개 사이트를 통해 이뤄지는데 현재 국내에서 아이템거래 전문 사이트는 50여 개가 성업 중이다. 최근엔 중개 사이트에서 받는 수수료를 면제받기 위해 작업장과 게임 이용자 사이의 직거래가 증가하는 추세다. 기자가 작업장에 머문 1박2일 동안에도 아이템 판매를 요청하는 10여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또 작업장에선 게임 이용자의 캐릭터를 위탁받아 능력치를 높여주는 일도 한다. 길게는 서너 달이 걸리는 이 작업은 의뢰비가 수백만원에 달한다.

최근엔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필리핀에서 작업장을 여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은 국내 게임 서버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인의 명의를 도용해 게임에 참여한다. 올 초 중국에서 대규모 리니지 명의 도용 사태가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같은 부작용을 줄이려면 차라리 아이템 거래를 양성화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권호 기자

◆ 리니지 게임=특정 캐릭터(등장인물)를 맡은 사용자가 게임 스토리를 따라 괴물을 죽이며 캐릭터를 키운다. 캐릭터가 좋은 아이템을 갖고 있어야 강해진다. 아이템엔 공격용(검.활 등)과 방어용(갑옷.헬멧 등) 아이템(도구)이 있다. '로한' '영웅전설' 등의 게임도 같은 방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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