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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소곤소곤연예가] 충청도 개그맨 이병진 "여행만큼은 잽싸지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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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얼마 전부터 이상한 호기심이 하나 생겼다. 사투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으레 표준말을 써오던 '연예인들의 실제 고향은 과연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이 바로 그것이다. 덕분에 예전 같으면 얼핏 흘려나 들었을법한 사소한 말투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무심코 억양 끝에 묻어나는 구수한 고향 내음을 동물적 감각으로 킁킁 쫓는 직업병도 생겼다. 최근 나의 레이더망에 딱 걸린 이 남자, 연예계 느림의 대명사 개그맨 이병진의 고향은 그가 순한 소처럼 꿈~뻑하고 눈을 한 번 깜빡일 시간이면 누구나 예상적중이 가능한데.

"제가 그렇게 느린가요? 충청남도 당진이 고향인데 그곳에서는 정말 제가 빠른 편이거든요. 어때요, 생각보다 느리지 않죠?"

여전히 느릿한 말투로 나름대로 서둘러 말하는 그의 고향은 역시 충청도. 그러나 충청도 사람들이 느리다는 편견은 이병진의 여행가방 싸는 속도를 보면 5초 안에 확 깨져버린다.

"제 취미가 여행인데요. 여행은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 아시죠? 올해만 해도 벌써 여행을 여섯 번이나 다녀왔어요."

겉으로 보기에 연예인들이 여행을 많이 다닐 것 같지만 불규칙한 스케줄 때문에 공식 촬영을 제외하곤 여행 계획을 세우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여행을 가야 직성이 풀리는 병진. 매번 쌌다 풀었다 해야 하는 여행가방이 번거로워 아예 겨울용과 여름용 가방을 각각 싸두어 집 현관에 항상 비치해 둔다고. 언제라도 마음과 시간만 맞으면 어디든 떠날 준비가 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의 가방을 가지고 여행을 갈 때는 그나마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는 경우다. 스케줄이 단 이틀만 연달아 비어도 무거운 옷 가방 대신 어깨에 카메라 가방 하나 가뿐히 메고 우리나라 방방곡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제가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여행을 하면 늘 새로운 앵글을 담을 수 있거든요. 어떤 때는 카메라만 들고 무작정 떠났는데 정신 차려 보면 아무것도 챙겨 간 것이 없어서 심지어 그곳에서 옷도 사서 갈아입어요."

순간을 담아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의 빠른 손놀림을 보면 과연 우리에게 익숙한 느긋한 이병진이 맞나 싶을 정도. 심지어 사진에 대한 평가만큼은 까다로운 연예가에서도 전시회를 권유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다.

"올해는 사진보다 먼저 할 게 있어요. 오래 전부터 그려온 만화책부터 완성하려고요. 그 전엔 날아라 슛돌이 월드컵 중계로 독일도 가야 하고. 가을에 결혼도 해야 하고. 그 사이 틈틈이 또 여행도 가야 하고. 그러고 보니 할 일이 참 많네요."

순간, 부지런한 병진씨를 보고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 느리다는 것과 게으르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 염화미소같은 그의 표정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생각은 빠르나, 실천이 게으른가요? 아니면 말은 느리되, 행동이 부지런한가요?'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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