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사람] 격투기界에 '외팔이 선수' 돌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외팔이 격투기 선수가 나타났다. 그것도 30전 23승7패(19KO)의 강자다. 물론 무협지 주인공이 아니고 실존인물이다.

경기도 이천시 설봉 무에타이(킥복싱과 유사한 태국 격투기) 도장 김선기(金善基.29)관장. 그는 잘린 오른팔 팔꿈치에 글러브를 끼고 출전한다.

오른쪽 글러브는 팔꿈치에 상처가 나지 않게 보호하는 구실만 하며 펀치는 전혀 날리지 못한다. 왼팔과 다리로만 경기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이다.

1m70㎝.67㎏의 아담한 체구에 격투기 선수 같지 않은 곱상한 얼굴의 그는 "오른팔을 잃은 후 진짜 챔피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른손잡이다. 무에타이에서 한쪽 팔이 없으면 단순히 주먹 하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인 '팔굽치기'를 할 수 없다. 팔로 상대를 끌어안고 하는 무릎치기도 안된다. 발차기 할 때 균형을 잡기도 힘들다. 그러나 그는 왼주먹을 짧게 자주 쓰며 발차기를 많이 하고 스텝을 이용해 핸디캡을 극복하고 있다.

金관장은 낙천적이다. 스물두살 때인 1996년 경기도 안산의 베어링공장에서 프레스 기계가 고장나 고치는 도중 오작동으로 오른팔을 잃었을 때도 좌절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팔 자르는 수술을 할 때 말고는 자포자기한 적이 없다"면서 "5개월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팔이 하나 없으니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을 좋아해 초등학교 3학년 때 태권도를 시작했고 중학교 시절엔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이천 제일고 3학년 때 색다른 운동을 찾다가 무에타이에 입문, 3년 만인 95년 무에타이 페더급 국가대표가 돼 태국국제대회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팔을 다친 후 당시 이원길 관장이 "사범으로 일해달라"고 제의하는 바람에 한팔로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퇴원한 지 2주 만에 대회에 나갔다.

2001년 64명이 출전한 코리아그랑프리 대회에서 준우승했고, 5명이 출전한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대표로 뽑혔다. 당시 심판이 KO승한 그의 오른쪽 글러브를 잡고 올리려다 너무 짧아 올려지지 않자 뒤로 돌아 왼손을 올린 장면은 무에타이 팬들에겐 잊지 못할 기억이다.

후배 양성을 위해 은퇴한 그는 최근 격투기 붐이 일자 다시 링에 섰다. '무예의 왕' 대회에 출전한 그는 일본의 강호에게 판정패했지만 상대는 큰 절을 하며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이천=성호준 기자<karis@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