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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반 붕괴 아파트 주민들…“이 상황에 집에 들어가라고?”

중앙일보

입력

31일 오후 금천구 가산동의 한 아파트 옆 공사장 한쪽 지반이 무너져있다. [피해 아파트 주민 제공]

31일 오후 금천구 가산동의 한 아파트 옆 공사장 한쪽 지반이 무너져있다. [피해 아파트 주민 제공]

 “구청에서 아파트 안 기울었다고 말하는데 믿는 사람 아무도 없어.”

박인숙(50·여)씨는 지난달 31일 새벽 지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쳐나왔다. 아파트 단지 내 땅이 꺼지는 사고로 긴급 대피한 아파트 주민들은 아직 불안을 떨치지 못 하고 있다.

가산동 아파트 지반 붕괴 사건을 담당하는 금천구청은 당초 발표보다 하루 늦은 2일 오후에 재입주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어떤 결정이 나오든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청과 시공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반 붕괴가 발생하기 전부터 구청과 시공사에 공사장 인근에 생긴 균열을 얘기해왔다고 한다. 구청과 시공사가 충분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석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사고 9일 전인 지난달 22일 공사장 인근에 생긴 균열을 사진까지 찍어 구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반 붕괴 사고가 발생한 가산동 아파트에서 1일 오후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정진호 기자

지반 붕괴 사고가 발생한 가산동 아파트에서 1일 오후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정진호 기자

주민들은 사고 이후 구청의 대응도 믿을 만하지 못 했다고 입을 모은다.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인데도 주민설명회가 열리기 20분 전에야 공지를 받는 등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짐도 못 챙기고 대피해 인근 모텔에서 잠을 잤다는 주민 송모(44·여)씨는 “자다가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불안해서 집에 어떻게 다시 들어가냐”며 “주민들을 상대로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지도 않아 뉴스로 정보를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 아파트 11층에 사는 주민 이모(29·여)씨는 “땅이 무너졌다는데 구청과 시공사는 주민들에게 현장도 공개하지 않는다”며 “공사장 인근에 생긴 균열을 알면서도 무시해온 시공사와 구청을 이제 와서 어떻게 믿으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구청 측은 아파트 안전 점검 이후 주민들을 설득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1일 오후 1시에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구청 관계자는 “못 들어가겠다고 하는 주민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무너진 지반에 흙을 메우는 복구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1일까지 꺼진 땅의 50%에 대해 흙을 부어 메우고 남은 50%도 최대한 빨리 복구를 완료할 계획이다. 지반 붕괴 현장을 조사한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공사 현장에서 흙막이 벽을 튼튼하게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땅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며 “붕괴된 곳을 흙으로 다 메우기 전까지는 재입주를 보류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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