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포럼

선생님, 사랑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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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주말 정말 오랜만에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졸업한 지 30년이 지나 선생님들을 모신 조촐한 자리였습니다. 사정이 있어 못 오신 선생님께선 직접 전화까지 주셨습니다. "네가 정말 보고 싶었는데…"하시며 말씀을 못 이으셨지요. 머리가 허예진 저희 눈에도 이슬이 맺혔습니다. 회한의 눈물이요, 참회의 눈물이었습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 두 마디밖에 더 드릴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쁘다는 이유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선생님을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못난 제자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마침 오늘이 스승의 날입니다. 선생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던 기억이 납니다. 궁벽한 시골 산간마을에 카네이션이 있습니까. 밤 새워 습자지에 빨강과 파랑 물감을 들여 철사에 꿰어 만든 종이 카네이션이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께선 가장 좋아하신다는 복사꽃보다도 이 카네이션을 더 좋아하셨지요.

교권 붕괴라고들 합니다. 교실이 무너졌다고도 합니다. 스승의 날 쉬는 학교가 70%를 넘는다지요. 촌지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희 땐 닭 많이 키우던 집 애들이 가끔 선생님께 달걀을 갖다 드리곤 했습니다. 저는 가을에 잘 익은 감가지 꺾어다 드린 게 전부였지요. 그러면 선생님께선 읍내 빵집에서 하나에 5원 하던 찐빵을 사주셨습니다. 저희는 재 너머 물 건너 20리쯤 되는 산길을 걸어 등교했습니다. 비가 많이 와 개울 물이 불으면 선생님은 개울가로 달려오셨습니다. 급물살을 건너려는 저희에게 고래고래 호통 치시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지요. 그래도 저희는 멀리 신작로를 돌아 점심때가 다 돼 등교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선 "오지 말랬더니…"하시며 눈시울 붉히셨습니다.

저희 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니, '스승은 그림자도 안 밟는다'느니 하는 말들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심지어 선생님은 화장실도 안 가시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이젠 다 옛날 얘기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지 오랩니다. 제자가 스승을 감금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나 이제 애들 대학 보내고, 슬슬 시집장가 보낼 걱정하는 입장이 된 저희가 애들 잘못 키운 탓도 큽니다. 저희 땐 한 집에 애들이 보통 네 명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애들도 이미 집에서, 또 동네 어른들에게서 예의를 배웁니다. 그러나 요즘은 대개 둘 아니면 하나입니다. 모두가 막내지요. 그러니 모두 제 새끼 귀한 줄만 알고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키우다 보니 버르장머리가 없어진 겁니다.

무너진 교단을 다시 세워 보자고 어느 날 전교조가 등장했습니다. 스승과 교단의 권위가 다시 서려나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이들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면서 교단은 더 험악해졌습니다. 심지어 어느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윽박질러 자살하게 한 적도 있습니다. 요상한 계기 수업으로 애들에게 편향된 이념을 주입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그간 정말 세상 많이 변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께선 그 긴 세월 동안 집 나간 아이 기다리듯, 솔베이그가 페르귄트 기다리듯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저희를 기다리셨습니다. 이번에 선생님들을 모신 것도 결국은 지금까지 저희가 제자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증명하는 행사일 뿐입니다. 오늘 마음속으로 조용히 불러 봅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선생님, 내내 건강하시고 오래 사세요. 이젠 자주 찾아 뵐게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유재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