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방·안기부예산 많이 깎여|내년예산안 국회 통과되기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내년도 예산안이 진통 끝에 법정시한인 2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 같다.
여소 야대라는 정국상황 때문에 시한이 지켜질지에 대한 우려가 많았으나 야3당간에 『법정시한을 못 지킬 경우 야당에게 책임이 돌아온다』는 인식이 작용해 시한은 일단 지키게될 것 같다.
국회예결위계수조정소위는 2일 새벽4시 반까지 계수정리작업을 벌여 정부안 19조3천7백12억원 중 5천6백93억 원을 삭감하고 4천2백64억 원을 증액하여 정부안에서 1천4백29억 원을 순 삭감했다. 당초 원안보다 겨우 0.7% 삭감한 셈이다.
예산조정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이번에 계수조정소위가 그런대로 넘어간 것은 소위위원11명 전원의 희망사항을 최소한 1건씩은 봐주었기 때문』이라며 『증액부문 중 특정지역사업의 경우는 모두 의원들의 압력 때문에 이뤄진 것』 이라고 귀띔.
눈에 띄는 내용을 보면 △목포대학·충북대학지원 △부산신발연구소 △섬진강 광역상수도 사업 △금호강 오염 방지조사 △대청댐 하수처리 △전주권 개발 △이리 수출자유지역 철책 공사 등이 있으며 예결 위원들의 지역구에 있는 문화재 보수사업 명목으로 45억원이나 증액했다.
정부부처의 로비내용을 보면 부처별 각종 수당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는 심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법관 및 검사의 재판수당을 위해 19억원과 선거관리위원장 판공비가 증액됐으며 내무부가 민생치안명목으로 1백11억원을 더 얻어냈다.
특히 예산심의 주체인 국회 스스로가 정부의 건설사업비 증액은 일체 인정하지 않으면서 의원회관 건립비만 당초 계획예산보다 25억원이나 더 늘려주어 일부에서 『공사를 맡은 특정업체를 봐주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번 예산심의과정에서 핵심을 이루었던 문체는 △세법개정으로 인한 세입 순 감소 1천4백28억원 △농어가 부채 경감재원 2천억원 △해직공무원보상비 9백65억원 등 총4천3백93억 원의 재원마련을 위해 어느 부처의 예산에 손을 대느냐가 문제였다.
우선 덩치가 가장 큰 국방비 중 1천3백3억 원이 깎여 가장 삭감이 많았고 다음으로 안기부예산이 숨겨져 있다고 야당이 주장한 예비비중 5백37억 원이 깎여 국방부와 안기부가 결과적으로 가장 피해를 보았다.
다음으로 많이 깎인 부분은 지방재정교부금·교육재정교부금 등 주인이 애매한 돈과 내무부와 보사부의 취로사업·양곡상환대금 등 빚 갚을 돈이 우선적으로 깎였다.
특히 과거부터 체제유지와 관련 있다고 지적돼왔던 각종 예산이 비록 규모로는 크지 않더라도 골고루 깎인 것이 특징이다.
주요내용을 보면 △사회정화위(6억5천만 원) △문장제작비(1억 원) △새마을운동본부출연(17억 원) △전경운영비(21억 원) △한국 청소년 연맹(1억2천만 원) △학생군사교육(29억원) △반공연맹보조(10억 원) △대한뉴스 및 애국가제작비(2억원) 등이다.
이런저런 예산에 손을 대고도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년도에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각종 건설사업의 계속 사업비가 추경 때 부활시켜준다는 조건으로 우선 삭감의 대상이 됐다.
이 때문에 건설부 소관의 △주암댐건설비 △금호강 광역상수도사업 △임하댐 △광양공업기지 등의 예산이 대폭 깎였다.
가장 많이 깎인 국방비의 경우 민정당에서는 내년 예산 중 방위비가 일반예산증가율 수준에 그치고 있고 GNP대비 5.1%에 그치고 있으니 환율절상과 유가인하에 따른 자동 삭감분 6백70억 원만을 깎자고 버텼으나 평민·민주당 등 야당이 최소한 2천억∼3천억 원을 깎자고 맞서 결국 1천3백억 원으로 조정.
안기부예산이 포함돼 있는 예비비의 경우는 예비비 3천8백억 원에서 무조건 5백37억 원을 깎아 앞으로 안기부와 경제기획원이 예비비사용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야할 것 같다.
이번 예산심의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여야4당간 시각이 다른 농어촌부채 경감문제.
계수조정소위는 이 문제를 맨 나중으로 돌려 2일 새벽에 가서야 거론했으나 평민당의 모호한 자세로 찜찜한 뒷맛만 남겨 놓았다.
평민당은 마지막날까지 농가부채탕감을 위해 금년도 세계잉여금 2조4천억 원 중 1조원을 사용하자는 당론을 고수했으나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조정예산편성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인정해 이를 후퇴시킨 대신 정부가 농가부채를 위해 별도 재원을 마련 해온 2천억원의 명칭을 놓고 물고 늘어졌다.
나웅배 부총리는 『정부가 별도로 만들어온 이 돈을 부채원금을 탕감하는 재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만 들어주면 무슨 결정이든 국회의사를 따르겠다』 고 원금 탕감부가 논을 고수.
이에 대해 평민당 측은 『이자는 탕감해주면서 원금 탕감은 왜 안 되느냐』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원금과 맞먹는데 원금이든, 이자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맞서다 결국 농수산외가 농어촌부채에 대한 법령을 만드는 것에 따라 집행하는 선에서 낙착됐다.
여기에다 민주·공화당도 『사회형평 상 탕감은 있을 수 없으니 2천억 원을 이자경감 등에 사용해야 한다』 고 정부 쪽의 논리를 지지해 『이 돈의 사용처는 반드시 4당 합의하에 결정돼야한다』 는 부대조건을 달아 넘어갔다.
농어촌 부채문제가 이렇게 풀려 계수조정소위는 표결 없이 조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평민당 측이 통과직후『당장 재원이 없다하여 그대로 넘어갔으나 추경 편성 때 부채탕감을 반영한다는 것을 약속하라』 면서 『평민당은 계수조정소위의 농가부채문제 결정에 반대하니 심사보고 때 반대의견이 있었음을 분명히 명시하라』고 요구해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매년 국회 예산심의 때는 정부 각부처가 예결 위원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것이 상례인데 금년의 경우는 여소 야대 탓인지 예년과는 다르게 여당의원보다 야당의원들에 대한 줄대기가 극성을 이뤘다는 후문.
마지막 계수 조정작업 때는 『회의내용을 일체 밖에 나가서 발설치 말자』 는 위원들의 약속 때문에 각 부처 예산관계자들은 문 밖에서 초조하게 대기.
답답해진 정부관계자들은 회의도중 간혹 나오는 의원들을 화장실까지 좇아가 진행 내용을 물었으며 그때 그때마다 통하는 의원에게 「쪽지」를 넣어주기도 했다.
민주당의 황병태 간사는 아예 공개적으로 쪽지를 펴 보이며『이렇게 많이 부탁을 하니 어느 것을 들어주느냐』고 비명.
각 부처에서는 의원들의 경력을 염두에 두어 내무부·농림수산부는 정종택 위원장, 기획원은 황병태 민주당간사, 상공부·재무부는 최우규 공화당 간사에게 매달려 집중로비.
해직공직자 보상비 9백66억 원이 걸린 총무처와 하반기 사업비가 뭉떵 갈린 건설부는 차관이 끝까지 남아 심의를 지켜봤으며 가장 피해가 큰 국방부의 경우 처음에는 예산실무자만 나와 있다가 삭감 폭이 커지자 장관에게 급히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건설부의 경우 사업비를 덜 깎이려 회의장 바로 옆에서 본부를 차리고 즉석에서 각종사업의 변경에 따른 공사비를 산출하는 등 법석. <문창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