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영웅' … 사회 권위 큰 손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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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권위에 손상=지난해 딸(4)에게 황 전 교수 위인전을 사줬다는 김진수(39)씨는 "딸에게 황 전 교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황당하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우석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 권위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청와대.정부.학계.언론 등이 '황우석 스타 만들기'의 공범으로 가담했기 때문이다. 고려대 김문조(사회학) 교수는 "소위 힘있고 위세가 센 곳들이 황우석 사태로 공정성과 전문성을 의심받았다. 이후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과정에서 국민의 불신감이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 "'줄기세포 없다'에 허탈"=많은 시민은 환자맞춤형 체세포 줄기세포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에 허탈해했다. 또 황 전 교수가 논문을 조작해 거액의 연구비를 타냈다는 결과에 분노했다. 익명의 한 네티즌은 "너무나 서글프다. 국민이 그리도 소망했던 일이지만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황 전 교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김문조 교수는 "황우석 사태로 우리 사회가 적당주의.성과주의.편법주의 등이 만연하다는 게 그대로 드러났다"며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고 이를 극복하는 대안을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

황 전 교수 지지자 100여 명은 이날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황 전 교수 지지자들은 분신자살과 서울대 노정혜 연구처장 집단폭행(2월), 학술토론회 방해(3월), 자살위협(4월) 등을 통해 지지의사를 밝혀왔다.

상지대 홍성태(사회학) 교수는 이런 행동을 팬덤 현상으로 진단했다. M 스트레스 클리닉 오동재(신경정신) 원장은 "팬덤은 믿고자 하는 대상을 무조건적 관용과 맹목적인 신뢰로 옹호한다. 대상의 과오가 드러나더라도 자신이 갈망하는 메시지에만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황 전 박사 지지자 중엔 희귀.난치병 환자와 가족.회사원.자영업자.주부 등 다양한 집단이 포함됐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서울대 조사위 결과를 부정하며, 황 전 교수의 연구 재개와 교수 복직, 줄기세포의 원천기술과 특허권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생명윤리 공론화 계기=황우석 사태에서 과학자의 연구성과물 검증은 과학자의 몫인데도 황 박사의 '학문 사기'가 언론과 검찰 등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연구원이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연구책임자에게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군대식 문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일부 소장 과학자들이 황 박사 연구의 문제점을 인터넷에 제기한 점은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또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사회 공론화의 계기가 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강대 이덕환(화학과) 교수는 "연구지원 방법을 투명하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로비나 끈끈한 인맥 대신 공정한 틀 안에서 경쟁하는 체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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