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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17년째 각방 쓰는 부부 통·일·독·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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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통일은 종잇장 위에서 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완성된다.” 독일 통일 15년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3부작의 결론이다. 사진은 1989년 11월 한 시민이 베를린 장벽을 망치로 허물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독일통일을 말한다' 3부작

(1) 머릿속의 장벽 김누리 편저, 한울아카데미, 363쪽, 1만5000원

(2) 변화를 통한 접근 김누리.오성균.안성찬.배기정.김동훈.이노은 지음, 한울아카데미, 556쪽, 2만원

(3) 나의 통일이야기 김누리.노영돈.박희경.도기숙.이영란 지음 한울아카데미, 286쪽, 1만3000원

"'의미'는 돈으로 살 수도, 힘으로 강요할 수도 없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말이다. 그 어떤 자본과 권력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내면과 마음이야 어쩌지 못한다는 말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래서 통합은 시스템을 합치는 체제통합과, 사람의 마음을 합치는 사회통합으로 나눠 보는 것이 맞다. 16년 전 역사적인 독일의 통일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미완의 프로젝트다.

6년 전 내가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푸른숲)를 펴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 독일은 통합은 이뤘지만 분단을 극복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독일의 경험은 우리에게 반면교사인 셈이다. 민족의 신화를 앞세운 낭만적인 민족주의 담론만으로는 통일 이후의 사회문화적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독일통일 15년(1990~2005년)의 냉정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통일독일 15년은 한마디로 정치경제적 통합의 성공과 사회문화적 통합의 실패로 결산될 수 있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시대사적 사건도 결국은 인간의 문제로 귀착되며,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통일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통일은 종잇장 위에서 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완결되는 것이다."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에서 펴낸 '독일통일을 말한다' 3부작은 총론에서 이렇게 인상깊게 선언을 한다. 때문에 3부작은 국가.경제만의 체제통합에 저당잡혀온 우리네의 아마추어적 통일논의를 업그레이드하는 새로운 신호탄으로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통일논의의 나머지 절반과 관련해 볼 때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 이 3부작이 일궈낸 성과는 무척 소중하다. 지금껏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대부분의 논의는 남북'사회'의 통합에는 관심이 없었다.

3권의 책은 '머릿속의 장벽' '변화를 통한 접근' '나의 통일이야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1권은 사회문화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연구자들의 조사분석 보고서다. 2권은 구 동독의 통일주역과의 개별 인터뷰로, 일종의 구술사(oral history)에 속한다. 3권은 직업별.성별.나이별로 선정된 사람들이 자유로이 자기 속내를 털어놓은 결과를 모아 놓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이 책에 따르면 1990년 독일통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불과 1년 만에 초고속으로 완수됐다. 이른바 체제통합의 폭과 대상은 정치.사법.에서 교육.토지제도의 모든 영역에서 마찰없이 극적으로 이뤄졌다. 겉으로는 '눈부신 성공'으로 보인다. 문제는 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귄터 그라스가 "오늘의 현실은 통일 과정에서 내가 내린 가장 암울한 전망보다도 더 암울하다"라고 혹평을 내리고 있을까.

이 책의 진단대로 지금 독일에서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은 함께 자라야 한다"는 동방정책의 설계자 빌리 브란트의 낙관적 전망은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 "한 뿌리가 아닌 것은 분리시켜라"라는 거센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동독 부활의 수상한 풍문과 구동독에 대한 향수를 뜻하는 '오스탤지어'(Ost+Nostalgia)의 수상한 풍문도 출몰하고 있다. 이번 3부작에 '마음과 마음의 통일'에 이르지 못한 동.서독사람들의 아우성과 비탄이 그득한 것은 그 때문이다.

"또 직장을 잃었어요" "통일되고 나서 사는 게 더 힘들어졌어요" "이럴 줄 알았다면 통일을 했을까요" "마누라는 떠나고, 일자리 잃고, 집도 없고". 바로 이것이 제3권 '나의 통일 이야기'의 주요 장절(章節)의 제목이자 내용들이다. 그렇게 속내를 털어놓은 것은 10대와 청년에서 중장년의 남녀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때론 충격적이기조차 하다.

결국 3부작은 독일 통합이라는 외적 충격이 직업.성.연령에 따라 어떻게 이해되고, 또 가공되고 있는지의 궤적을 섬세하게 추적하고 있다. 독일 민초들의 속내를 엿보고 또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3부작 중 가장 새로운 시도다. 바로 이 책의 출현으로 지금까지 분분했던 남.북한 통일 논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다시 말하지만 소박한 민족주의적 정념이란 결코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엄연한 현실적인 교훈만 해도 어디란 말인가. 자, 그렇다면 제2권의 제목을 다시 한번 차근하게 음미해 볼 일이다. '변화를 통한 접근'. 그렇다. '접근을 통한 변화'만을 추구하는 우리 분단 한국인에게 훌륭한 대안의 목소리로 들린다.

이해영 교수<한신대·'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의 저자>

"게으른 동독놈들" "역겨운 서독놈들"

독일 사람들이 털어놓는 속내

"서독 사람들이 내는 세금으로 동독 경제가 복구된다고 말들을 하지만,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해야지. 베씨들이 우리(동독)를 가지려고 한 거니까 돈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동독 사람들은 이류 인생처럼 취급되는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에는 실은 삼류.사류 인생이야. 서독 걔네들은 오씨들을 '게으른 개'라고 하지만, 실은 완전히 그 반대가 아닐까?"('나의 통일 이야기' 209~211쪽 요약)

'게으른 오씨(Ossi.동독놈들)' '역겨운 베씨(Wessi.서독놈들)'. 1990년 통일 이후 올해까지 16년이 흐른 지금까지 동.서독 사이에는 '마음의 불연속선'이 존재한다. 즉 오씨란 말에는 서독인들이 동독(Ost)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경멸의 감정이 잔뜩 묻어난다면, 베씨에는 동독인들이 서독(West)사람들을 바라보는 불편한 감정이 녹아 있다.

'나의 통일 이야기'(이하 1권) '변화를 통한 접근' (2권)'머릿속의 장벽'(3권) 3부작은 읽을거리로도 훌륭한데, 그것은 바로 지금 독일사람들의 속마음을 효과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런 성과는 시스템 통합, 통일비용 따위를 따지는 거대담론 쪽이 아니라'작은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성과에 힘 입은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발언이 독일에서는 발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툭 터놓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즉 자기검열이 거의 없다는 게 이 시리즈의 특징이다.

"서독에 간 내 친구는 진짜 무시를 당한대. 단지 동독 출신이라는 이유로. 나도 그곳에 간 적이 있는데 진짜 화가 나더라고. 처음 보자마자 반말이야. 서독에서도 깡촌에 사는 주제에 뭐가 잘 났다고….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통일 이후에 서독사람들이 동독 지역에서 최고의 기술자들을 왕창 데려다가 값싸게 부려먹고 있잖아.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거지. 동독 사람들을 '후지고 낡은 것'처럼 여기는데, 웃기지 말라고 해"(3권 81쪽).

그렇게 말하는 사람인 라스는 19세 남자. 즉 통일 직전에 태어난 통일1세대에 속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통일이 엄마 아빠에게 가져다준 건 고통뿐"이라고 믿고 있다. 중.장년 세대는 어떨까? 특히 여성들은 직장생활.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던 동독의 사회보장제도가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도 흥미롭다.

"저도 동독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구만유. 호네커(서기장) 시절에는 솔직히 말도 못하고 살았슈. 그렇다고 지금이 좋은 것도 아니구유. 저는 사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동독 시절에 더 잘 나갔시유."(잉에.52세 여성)

구어체와 함께 "날 것 그대로"(3권18쪽)의 목소리를 담아낸 3부작에서는 지식인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동독의'노동신문'격이었던 '노이에스 도이칠란트'의 사장 디트마 바르취가 일례다. 왕년에 110만부 팔리던 이 신문은 현재 5만부로 줄었지만, 여전히 좌파언론의 기수로 평가받는다. 바르취의 말은 가슴 철렁하다.

"구 동독 사회에는 북한과 달리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체제 개혁을 요구하는 폭넓은 엘리트 계층이 존재했다"(2권 502쪽)는 것이다. 이 말이 왜 가슴 철렁할까. 3부작의 공저자들은 이 책이 통일 독일의 거울에 분단 한국을 비춰보는 작업이라고 하지만, 구 동독은 오늘의 북한과 달리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로웠다. 분단 중에도 동.서독교류가 지금의 남.북한 사이보다 많았다. 그럼에도 통일 독일이 몸살을 앓고 있다면, 분단 한국은 지금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 3부작은 술술 읽히지만 무겁게 다가오는 책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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