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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시대' 못 읽는 한총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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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학생들은 총학생회가 한총련을 탈퇴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서울대 총학생회가 한총련 탈퇴를 선언한 10일,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난 한 법대 학생은 "관심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문제에 대해선 "확성기 소리가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 총학생회의 공약이 꼭 지켜지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 포털사이트 '스누라이프'에서도 한총련 탈퇴선언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찾아볼 수 없다. "잘했다"는 지지의 글과 "예전부터 탈퇴했었기 때문에 이번 선언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가끔 눈에 띌 뿐이다. "한총련을 탈퇴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거의 없었다. 한총련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뜻이다. 도서관 앞 집회 문제에 대해서는 서명운동을 벌이며 앞에 나서지만 한총련 탈퇴는 '나 몰라라'하는 대학생들, 이것이 지금 대학의 모습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학점과 취업, 고시공부 등 현실적 문제에 더 집착한다. 민족.국가.사회 등 거창한 담론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사회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학생들이 사회 변혁의 전면에 나서는 시대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학생운동조직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반미투쟁' '독점자본 타도' 등 외치는 구호도 그대로다. 과격한 운동방식이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도 바뀌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학생운동과 총학생회를 '남의 일'로 여기고 멀어졌다. 1999년과 2003년.2004년 비운동권이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것이나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이 50%를 간신히 넘기는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와 모든 정치조직과의 분리' 선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학생들과 괴리된 학생운동에 매달리는 '학생 없는 총학생회'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학생운동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복지에 전념해야 학생들에게 다가설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학생 정치조직과 결별을 선언한 서울대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학생회의 품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왜 한총련 탈퇴 선언이 나왔는지,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총련을 비롯한 학생 운동권은 고민해야 할 때다.

한애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