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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아침] '텃밭에서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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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텃밭에서 1' - 윤중호(1956~2004)

새벽마다, 오릿길 텃밭을 다녀옵니다.

하지 감자 웃자란 순을 떼어내고

엇갈이배추를 솎습니다.

토마토가 탱글탱글 여물어가고

고추가 고추만 하게 대롱거리는데

며칠 전 뿌린 열무가

땅을 들썩이며 움쑥 솟았습니다.

거둔 완두콩으로

아침을 지어 먹었습니다.

막 따온 청상추

아삭아삭 소리가 납니다.

참 행복합니다.

생각해보니

참 불쌍합니다.



아파트에 살다가 텃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던 해 봄날, 나는 지주가 된 것 같았다. 친구와 후배들을 불러, 열 평 남짓한 텃밭을 갈아엎었다. 밭일은 한 시간 만에 끝나고, 막걸리 잔 돌아가는 새참이 저녁까지 이어졌다. 신도시 곳곳에 주말농장 플래카드가 눈에 띌 때다. 누가 주말농장을 탓하랴. 다만, 주말농장이 사람이 짓는 농사의 마지막일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한 것이다. 주말농장이 마지막 흙일 것 같아 암담한 것이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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