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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정책실장 vs 관료 부총리 갈등…노무현,문재인 정부 평행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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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출신’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교수 출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중앙포토]

‘관료 출신’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교수 출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중앙포토]

“학자 출신은 이론적인 이상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관료 출신은 매일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에 매달린다. 둘은 부딪힐 수 밖에 없다.”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맡았던 이헌재 전 부총리는 2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관료 출신)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교수 출신)의 엇박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관료 출신인 이 전 부총리도 재직시절 교수 출신인 이정우 당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동산세 문제 등을 놓고 상당한 마찰을 빚었다. 정치권에선 ‘김동연-장하성’ 갈등이 노무현 정부의 데자뷔란 평가가 나온다.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왼쪽)가 2003년 청와대에서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왼쪽)가 2003년 청와대에서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취임하며 경제 개혁의 첫 단추로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를 신설했다. 새 정부의 개혁 과제를 청와대가 틀어쥐고 밀고 나가겠다는 구상이었다. 그 자리엔 진보성향의 경제학자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임명했다. 경제부총리 자리엔 경제관료 출신인 김진표 전 부총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를 앉혔다. 교수 출신 개혁파에게 중장기적인 정책 밑그림을 그리게 하고 안정추구형 관료에겐 당면한 현안 과제를 맡긴다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시작부터 경제 ‘투 톱’은 충돌했다. 2003년 3월 김진표 부총리는 “앞으로 5년 이내에 동남아 경쟁국보다 법인세율 부담이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경부 세제실장 출신으로서 평소 소신이었다. 그러나 3개월 뒤 이정우 실장은 “법인세를 인하한다고 투자확대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노동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정우 실장은 취임 때부터 노조의 경영 참여를 골자로 한 ‘네덜란드식 노사모델’ 도입을 강조했다. 반면 김진표 부총리는 노조의 경영 참여에 대해 “고용ㆍ근로 조건과 직접 관련 있는 분야에 대한 경영자와의 협의는 현행법에도 보장되고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참여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정수석비서관), 문희상 국회의장(당시 비서실장)도 참석했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참여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정수석비서관), 문희상 국회의장(당시 비서실장)도 참석했다.

결국 ‘개혁ㆍ분배’에 초점을 맞춘 이정우 실장과 ‘안정ㆍ시장’에 방점을 찍은 김진표 부총리는 사사건건 정책 혼선을 빚다가 결국 취임 1년여 만에 두 사람 모두 교체됐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관료 출신(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교체됐다. 시장에선 ‘실패한 실험’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후에도 교수 출신 청와대 인사와 관료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김진표 부총리의 후임이었던 이헌재 부총리는 강남 집값이 들썩이던 2004년 11월 부동산 양도세 중과 문제를 두고 “1가구 3주택 이상 중과세를 내년 초부터 시행하기로 했지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의 생각과는 다른 입장이었다. 그러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정우 전 실장은 “내년 시행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반박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이헌재 전 부총리가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개인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정부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이헌재 전 부총리가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개인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학자 출신의 ‘가속 페달’와 관료 출신의 ‘브레이크’ 사이에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고용쇼크의 주범으로 공격받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두고 ‘교수 출신 개혁파’ 장하성 정책실장은 “기다려달라”고 말했지만, ‘관료 출신 안정파’ 김동연 부총리는 “(경제 정책의) 개선 또는 수정을 검토하겠다”라고 했다. 장 실장은 개혁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반면 김 장관은 속도 조절 가능성을 피력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많은 정권이 교수 출신 인사에게 경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게 하지만 관료 사회와 부딪혀 정부 출범 2년 이후엔 다시 관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임기 마지막 1년은 레임덕을 겪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런 식으로 개혁이 좌초되지 않도록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 정책 조율을 잘 해 일관성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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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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