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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폭로 부하도 정치 맞수도 "개"…트럼프의 거친 'Dog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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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적을 겨냥할 때 ‘개처럼(like a dog)’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최근에는 백악관 전 참모로 일했던 한 흑인 여성을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개’에 빗대 비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정인 비하할 때 개에 비유 논란…‘퍼스트독’ 전통도 깨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오른쪽) 전 백악관 대외협력국장 모습. [AP=연합뉴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오른쪽) 전 백악관 대외협력국장 모습. [AP=연합뉴스]

지난해 말 해고된 전 백악관 대외협력국장인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이 자신의 인종차별 발언을 폭로하는 등 공격을 이어가자 트위터에 “켈리(백악관 비서실장)가 그 개(dog)를 빨리 해고한 건 잘한 일”이라고 막말을 퍼부은 것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어휘집에서 상대방을 개에 비유하는 것보다 더 악의적으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말’은 없다”(워싱턴포스트), “성적, 인종적 언급으로 해석될 수 있다”(CNN) 등의 지적이 나왔다.

엘리자 커밍스 민주당 하원의원도 대통령을 향해 “어떤 여성을 개라고 부르는 것은 당신과 백악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이런 저속한 행동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트위터에 썼다.

트럼프가 사람을 개에 비유한 건 뉴먼 뿐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비난하며 올린 트위터.[트위터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비난하며 올린 트위터.[트위터 캡처]

대선 경쟁자였던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에는 “개처럼 진땀을 흘린다(sweat like a dog)”라고 했고,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 마크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과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는 “개처럼 망했다(choked like a dog)”고 공격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뉴잉글랜드 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파시스트적 스타일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본질적으로 훌륭한 반면 그들은 나쁘고, 결함이 있고, 인간이 아닌 식”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해 두려움과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도자들이 비인도적인 수사학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랑받는 개…트럼프에게만 예외?

미국에선 둘 중 한 가구에서 개를 키울 정도로 애견 사랑이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다. “워싱턴에서 친구를 사귀려면 개를 키워라”는 말도 있다. 때문에 트럼프는 유난히 개를 싫어하고,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개’란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리는 건 이런 부정적 인식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도 있다. “미국에서 개는 인기 있고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대상이다. 오히려 더 모욕적인 건 쥐나 돼지, 늑대라고 불리는 것”이라는 워싱턴포스트(WP)의 설명도 그 때문이다.

이바나 트럼프. [AP=연합뉴스]

이바나 트럼프.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부인인 이바나 트럼프는 회고록 ‘트럼프 키우기’에서 ‘도널드는 개의 팬이 아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바나는 부부의 일정에 종종 애완견인 ‘차피’를 데려가고자 했지만 트럼프는 원치 않았다고 한다.

백악관 ‘퍼스트독’ 전통 깬 트럼프   

트럼프는 150년 전통을 깨고 백악관에 ‘퍼스트독’을 들이지 않은 사실상 첫 대통령이기도 하다. 퍼스트독은 대통령의 부인을 칭하는 ‘퍼스트 레이디‘에 빗댄 단어다. 역대 미 대통령들의 백악관 생활에서 명품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영국에서 사슴을 사냥하던 품종인 폭스 하운드를 키웠다고 한다. 최근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렉스’를 애완견으로 뒀고, 조지 HW 부시에는 ‘밀레’가, 빌 클린턴에겐 ‘버디’, 버락 오바마에겐 ‘보’와 ‘서니’가 대통령 곁을 지키는 퍼스트독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그가 기른 퍼스트독 ‘보’.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그가 기른 퍼스트독 ‘보’. [AP=연합뉴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삼기 위해 개를 활용하기도 했다. 1952년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 공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친구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며 강아지를 언급했고, “사람들이 비난하더라도 이 강아지만은 꼭 키우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연설은 이른바 ‘체커스(강아지 이름) 연설’로 불렸는데 이를 계기로 닉슨의 인지도가 급상승했다고 한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가족과 닉슨 대통령이 기른 ‘체커스’의 모습. [AP=연합뉴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가족과 닉슨 대통령이 기른 ‘체커스’의 모습. [AP=연합뉴스]

WP에 따르면 개를 기르지 않았던 마지막 대통령은 25대 윌리엄 매킨리인데 그마저도 앵무새와 수탉을 애완동물로 길렀다.

더글라스 브린클리 라이스대학 역사학 교수는 “트럼프가 애완을 기르지 않는 것은 그가 따뜻함, 배려심이 없기 때문”이라며 “그의 곁에 애완동물이 없다는 것은 나르시시즘의 또다른 징후”라고 해석했다.

◇외교석상에도 애견 데려가는 정상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웰시코기 ‘윌로우’의 생전 모습. [AFP=연합뉴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웰시코기 ‘윌로우’의 생전 모습. [AFP=연합뉴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각별한 웰시코기 사랑은 유명하다. 웰시코기는 다리가 매우 짧고 꼬리가 없는 땅딸막한 개 품종이다. 여왕은 18세가 된 1944년 생일 선물로 ‘수잔’이란 이름의 웰시코기를 선물 받았는데 신혼여행에 몰래 데려갈 정도로 아꼈다고 알려져 있다. 70여년 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함께하면서 수잔의 자손은 30마리로 불어났다. 이 때문에 웰시코기는 영국 왕가를 대표하는 ‘로열견’으로 불린다. 지난 4월에는 그의 곁에 남은 유일한 웰시코기인 ‘윌로우’가 세상을 떠나면서 여왕이 큰 슬픔에 빠졌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07년 독-러 정상회담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의 반려견 '코니'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07년 독-러 정상회담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의 반려견 '코니'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강인하고 딱딱한 이미지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알아주는 애견가다. 그는 ‘라브라도 코니’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공식 외교 무대에도 종종 등장시켰다. 특히 2007년 1월 러시아 소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났을 때 코니를 데려간 일화는 화제를 모았다. 메르켈은 개에게 물린 경험 때문에 개 공포증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푸틴이 이를 알고도 코니를 데려갔다는 것이다.

CNN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훗날 기자들에게 “나는 왜 그가 개를 데려왔는지 안다. 그가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었던 거다. 러시아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가진 게 없고, 약점을 보이기 두려웠던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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