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우리제의 역공|미군철수·3자회담 되풀이|평화의지 과시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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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의 이근모정무원총리가 16일 이현재부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밝힌 남북정치·군사회담개최 제의와, 이와함께 제시한 「포괄적 평화방안」은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측 입장을 총정리한 「종합판」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정치·군사회담제의와 평화방안의 골격은 그동안 북측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내용을 답습하고있다.
그러나 북측은 이번에 이를 구체화시키면서 최근 관심사로 등장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한점이 특이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그동안 우리측은 노태우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밝힌 남북정상회담개최 제의 이래 국정연설·유엔총회연설등을 통해 이를 계속 강조해왔다. 정상회담만 열리면 북측이 주장해온 군비축소등 군사문제까지도 논의할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에 대해 북측은 김일성연설(9월8일)을 통해 선미군철수와 남북불가침조약체결을, 조국평화통일위 성명을 통해선 국가보안법철폐등을 각각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정상회담의 수용의사를 밝히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엔 정치·군사회담은 물론 3자회담이 잘 추진되면 「최고위급회담」을 열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것은 북측이 정상회담에 대해 계속 조건을 붙임으로써 『정상회담에는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보다 분명히 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북한측은 이처럼 정상회담은 회피하면서 「포괄적 평화방안」을 통해 오는 91년말까지 3단계로 나눈 미군병력 철수및 핵무기철거와 남북병력감축안등 보다 구체적인 정치·군사대결상태 완화방안을 제시하면서 정치·군사회담 개최를 제의했고, 이와함께 3자회담도 되풀이 강조했다.
북측의 이같은 대남제의에는 몇가지 의도가 담겨져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측이 정치·군사화담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논리는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완화시켜야 남북간 불신과 오해가 가실수 있는데 이같은 대결상태는 주한미군때문에 생겼으므로 이를 철수해야한다』고 요약할수있다.
즉 우리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미군철수가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북측은 △그들이 꺼림칙하게 여기는 우리의 정상회담제의에 대해 역공을 하고△국내일각에서 제기되고있는 주한미군철수 분위기를 고조시킬 필요성에서 다시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측은 이에 덧붙여 3자회담을 되풀이 제기함으로써 한미간의 의중도 떠보려는 생각을 갖고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지난 86년말과 87년1월에 했던 정치·군사회담제의때보다 좀더 구체적인 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내외에 「평화의지」를 과시하려는 선전적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이번 제의에 대해 정부가 어떤 대응태도를 취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며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입장표명이 나올것 같다.
대북관계에서 지금까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정상회담에서 무엇이든지 논의할수 있다는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적십자회담등 다른급의 회담과 동시라면 정치·군사회담도 응할수 있다는 것으로 정리할수 있다.
따라서 이같은 입장을 고수할지, 아니면 현재 일부 학계·재야에서 제기되고있는 『논의야 할수 있는것 아니냐』는 주장을 수용해 보다 신축성있게 대응할지 정부측 태도가 주목된다.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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