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경축사 다음날 북한 노동신문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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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하루 뒤인 16일, 북한이 대남 비난 논조를 수그러뜨렸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서다. 북한은 북ㆍ미 협상이 교착 국면이 길어지자 지난달부터 남측 정부를 향해 비난과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남측 정부가 미국의 대북 제재 눈치를 보느라 남북 교류와 협력에 소극적이라고 주장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과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과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동신문이 지난달 31일 문재인 정부를 향해 “청와대 주인은 바뀌었지만 이전 보수정권이 저질러놓은 개성공단 폐쇄나 금강산 관광 중단에 대한 수습책은 입밖에낼 엄두조차 못한다”며 “외세에 편승하여 제재ㆍ압박 목록에 새로운 것을 덧올려놓고 있는 형편”이라고 비난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3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도 북측 단장인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도 기자들에게 “대북제재를 거론하는 남측에 물어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고위급회담 직전에도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대북 제재에 편승해 철도ㆍ도로 협력 사업에서도 ‘돈 안 드는 일’만 하겠다는 심산”이라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보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보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은 그러나 문 대통령의 15일 광복절 경축사 이후 이런 비난 논조의 톤을 낮췄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라며 “남북 간에 더 깊은 신뢰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동시에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 설치 등 경제협력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노동신문은 16일, 비난의 화살을 남측 정부가 아닌 미국으로 돌렸다. 노동신문은 이날 “미국은 ‘대조선(대북) 제재의 철저한 이행’에 대해 떠들어대면서 남조선 당국은 물론 기업체, 민간단체들에까지 북남 사이 협력과 교류에 나서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 민족 내부 문제, 북남관계 문제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대화와 협력에 방해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 관계 개선을 미국이 대북 제재를 내세우며 가로막고 있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일단은 호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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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이 대남 압박을 멈췄다고는 볼 수 없다. 신문은 이날 “제재 압박과 관계개선은 양립될 수 없다”며 “‘제재 압박’의 간판을 내걸고 북남협력과 교류를 가로막으려는 외세와 공조하고 추종하여서는 북남관계를 우리 민족의 이익에 맞게 전진시켜 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톤은 최근의 거센 비난에 비하면 한결 누그러진 셈이다.

북한 체제 특성상 16일 노동신문의 글이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한 공식적 반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5일 경축사에 대한 분석을 대남 기구 및 노동당 유관 기관에서 분석하는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도 15일 경축사 직후 우선 문 대통령의 제안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이같은 기사를 냈을 가능성이 크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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