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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 총 출연 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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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리친쿤」이란 이름은 몰라도 싱가포르 이광요 수상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많다. 유명인의 아버지라서가 아니다. 그는 싱가포르 시내 슈프림 빌딩에 있는 한 시계포의 점원일 뿐이다. 올해 81세.
그 직장엔 벌써 28년째나 있었다. 젊은 시절, 영국계 셸사에 근무했던 경력으로 보면 시계포 점원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 직업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그의 행색이나 언행을 보면 누구도 그가 수상이나 막강한 권력군의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아버지가 설마 끼니를 걱정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광요 수상은 누구 못지 않은 강권정치를 하면서도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은 남다른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부패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국민들이 믿어줄 만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친아버지는 고사하고 장인에, 처남에, 동서까지도 한몫을 단단히 챙기고 있다. 삼촌과 친형제들, 사촌 형제들이 여기서 빠질 수 없다. 마치 살찐 암소라도 한 마리 잡아놓은 듯이 온 가족이 달러들어 뜯어먹는 광경이 연상된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가족구성을 보면 무려 18종의 친·인척이 어울려 있다. 가구주 외에 가구주의 배우자, 배우자의 혈족, 자, 자의 배우자, 손, 손의 배우자, 부, 모, 형제 자매, 이들의 배우자, 질, 조부모, 백 숙부, 고모, 백 숙모, 종형제 자매, 질의 배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는 그 점에서 온 가족이 총출연해 비리 극을 꾸민 셈이다. 그야말로 우리 나라 가족 제도에 누구보다 충실했던 셈이다.
우리는「레이건」미국 대통령의 아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한 시절 별 볼일 없이 지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아들은 무용수였다. 가까운 일본의 「나카소네」수상도 5년을 집권했지만 그의 아들이나 동생이 어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의 장인이나 4촌, 3촌, 동서 이름이 신문에 소개된 일도 물론 없었다. 우리와는 가족제도가 달라서 그런 것인가.
글쎄, 너무 순진한 얘기 같지만 전 전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8년 전 그 시절, 그 모습대로 살고 있다면 얼마나 멋이 있는가. 그런 사실들이 뒤늦게 밝혀지고 세상에 널리 화제가 되면 본인들은 물론 전씨 일가의 격이 저절로 올라갔을 것이다. 결국 오늘 전씨 일가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그 점에서 권력 깨나 쥐고 흔드는 사람들은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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