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씨 일가 문제의 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간 듯한 분위기 속에 정부·여당과 전씨의 연희동 측간에는 연일 처리방안을 둘러싼 협의를 벌인다는데 도대체 무슨 얘기를 갖고 이렇게 꾸물대고 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상황은 각 일각 긴박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감정은 격앙되고 있는 터에 무슨 조건을 따지고 헌납재산의 액수를 놓고 이견을 조정 중이라는 얘기는 차마 듣기가 거북하다.
처리 방안의 골격으로 제시되고있는 해명→사과→헌납→낙향의 원칙이 결정됐으면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실행이 있을 뿐이지 여기에 조건이나 협상이 개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 형제들과 종형제, 처남, 동서 등 주변 인물들이 하나 예외 없이 모조리 저지른 오탁의 사례들이 연일 터지고 있는데 해명·사과에 무슨 조건이 붙을 수 있는가.
재산 헌납 문제도 그렇다. 일해재단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전 전 대통령 본인을 중심으로 엄청난 돈이 자의적으로 조달, 처분된 것이 명백한데 이런 과정에서 이루어진 축재가 국민에 환원되는데 액수의 조정이 왜 필요한가. 액수가 얼마가 되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밝히고 국민에게 되돌려 주면 그 뿐이다.
그것을 마치 협상 대상이라도 되는 듯이 「조정」이라는 말이 들리는 자체가 불쾌한 일이다.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자기가 가져서는 안 될 재산이 얼마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이제나마 뉘우치고 성심을 다해 현재의 자기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반성조치를 하는 것이 남은 마지막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주변의 친·인척재산도 그것이 특혜와 권력의 그늘에서 이뤄진 것인 이상 개인소유로 유지할 생각은 버려야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여당도 이 문제를 두고 더 이상 시간이 없음을 알아야한다. 모든 문제를 전씨 일가의 결심에 맡기고 여권은 발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일 것이다. 연내에 5공 청산작업을 매듭짓기로 한 이상 연희동 측과 「협상」이나 「조정」만 할 게 아니라 나름대로 처리방안을 밝히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나 민정당 측은 어차피 여론의 비난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할 것이다.
5공이 전씨 일가만의 5공이 아니었고 지금의 6공 세력도 5공의 중요한 일부였던 만큼 청산되고 비판받아야 할 요소는 여권 내부에도 많다. 이 점을 인정하는 한 정부·여당은 정치적 손실을 각오하면서도 처리기준을 내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여당이 노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과의 면담을 회피하는 듯이 보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이 필요하면 전씨를 만나고 직접 이 문제에 관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가령 기존의 방침대로 야당이나 일부 여론의 비난이 있더라도 이 문제의 정치적 처리를 밀고 나간다면 노 대통령이 전씨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해명에서 낙향까지 이어지는 처리방안도 그저 비공식적인 논의 단계에 둘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정부·여당의 방침임을 노 대통령이 명백히 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어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씨의 사법적 처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뜻밖에 높았다. 이 경향이 줄어들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을 정부·여당 측은 직시해야 한다. 학생들의 화염병은 날로 치열해지고 국민 감정은 거칠어져 가고 있다. 더 이상 끌면 정치권이 무력해지는 상황이 올는지도 모른다.
국민 여론이나 시위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는 충동이 계속 치솟고 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빨리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처리 전망이라도 내놓아야 이런 충동은 그나마 진정될 수 있다.
이제 전순환씨 구속에 이어 전기환·전우환씨도 구속되었다. 곧이어 처남·동창들에게도 사법의 손은 미칠 것이 틀림없다. 그 다음 순서로 국민은 누구를 지목할 것인가. 그런 상황이 되면 정부·여당이 비록 정치적 처리를 하고 싶더라도 할 힘이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으로서는 귀국 즉시 이 문제에 관한 처리방안을 명확한 어조로 밝혀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야당 총재들과도 직접 만나 문제처리의 의견교환을 하는 것도 검토함직 하다.
여권은 이 문제를 그 동안 질질 끌어오는 바람에 사태가 더욱 악화됐음을 이제는 알았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 중요한 고비에서 결단을 내리는데 또 다시 실기하거나 우유부단한 자세를 보이지 않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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