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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1.08명 '인구재앙'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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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하지만 박씨는 2008년 이후에도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지난해에야 원하던 직장으로 어렵게 옮겼는데 확고한 입지를 다지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해요. 2~3년 후엔 승진도 해야 할 텐데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례2: 35세에 첫아이를 본 대기업 과장 김모(37.남)씨. 첫애가 두 돌이 지나자 둘째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첫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한 아내는 "있는 애라도 잘 키우자"며 둘째 아이를 갖기 싫어하는 눈치다. 김씨 자신도 둘째 아이를 낳아 대학 졸업할 때까지 직장생활을 계속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아내에게 "둘째를 갖자"고 강하게 말하지 못한다. 김씨는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여성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외동아이에 만족해야 하는가 고민하고 있다.

통계청이 8일 발표한 '2005년 출생통계 잠정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1명이 임신할 수 있는 기간(15~49세)에 낳는 평균 자녀 수(합계출산율)가 1.08명으로 떨어졌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4.53명) 이후 가장 낮고, 1.16명이었던 2004년보다 0.08명 줄어든 것이다. 이는 홍콩(2000~2004년 평균 0.95명)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 수도 43만8000명으로 전년의 47만6000명보다 3만8000명 감소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또 늦은 결혼.출산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30대 산모의 비율(51.3%)이 20대 산모(47.7%)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아이를 낳는 주 연령층이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간 것이다. 10년 전인 1995년 30대 산모의 비율은 25.1%에 그쳤다.

◆ 출산율 하락속도 너무 빠르다=인구가 현재 규모를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하지만 국내 출산율은 이미 그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지난해 1월 '장래인구 특별추계'를 발표하면서 2020년 인구가 4996만 명을 기록한 이후 점차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통계청은 당시 출산율이 2005년 1.19명에서 2030년 1.3명으로 점차 회복되는 것을 가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출산율이 통계청의 예상보다 급격히 낮아져 전문가들은 인구감소 시점이 1~3년 정도 앞당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 저출산은 경제적 '재앙'=인구가 빠르게 감소해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경제에 결정타를 안겨준다. 성장을 짊어질 일손이 모자라는 것은 물론 내수의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또 인구는 줄어든 상태에서 노인의 비중이 커져 젊은 층의 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국민연금 등 사회안전망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연금을 받을 사람은 많은데 20~30년 후 이를 부담할 젊은 층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저출산에 따른 인구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2000년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 도달했다. 이어 2018년엔 '고령 사회'(노인인구 비율 14% 이상)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넘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8년이다. 일본은 24년(94년), 독일은 40년(72년)이 걸렸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로 실제 생산을 할 수 있는 인구가 줄면 성장잠재력이 낮아지고 국민연금이 급격히 부실화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대책 없나=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출산장려책을 내놓았지만 별 효과를 못 거둬 고심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정책연구팀의 이삼식 팀장은 "지금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선 20대 부부가 쉽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며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출산율이 1명 밑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불임부부 지원 등은 근본적인 출산장려책이 될 수 없다"며 "아이를 낳으면 일정한 아동수당을 지급해 벌이가 없어도 자식을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만 출산율이 회복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프랑스의 경우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매달 159유로(약 19만원)의 보조금을 주며, 두 자녀를 둔 가정엔 110유로(13만2000원), 세 자녀 가정엔 252유로(30만2000원)를 가족수당(2004년 기준)으로 지급한다.

김원배.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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