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누진제, 북한 석탄, 영국 원전 해지…3중 악재 휩싸인 한국전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전력이 최근 터진 잇따른 악재에 휘청이고 있다. 주가도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시가총액은 4거래일 만에 1조4000억원 넘게 증발했다.

주가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은 전기요금 누진제 인하 가능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사실 폭염에 전력 사용량이 늘면 한전의 이익도 증가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올해는 폭염이 되레 실적에 부담을 주고 있다. 정부가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고, 한시적으로 요금을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한전은 당초 원전 가동률이 높아지는 2분기를 반등의 계기로 삼으려 했다. 1분기 손실의 주범이던 높은 발전단가 문제를 해소하고, 수요 증가를 기대해서다. 계획은 틀어졌다. 도리어 전기요금 조정에 따른 추가 손실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여기에 영국에 원전을 수출하려던 구상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도시바는 지난달 한전에 뉴젠 지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뉴젠은 리버풀 북쪽 무어사이드 지역에 3기의 원전을 짓는 사업자다. 한전은 당초 뉴젠 지분 100%를 인수할 계획이었다. ‘협상 과정에서의 실질적 지위에 변화가 없다’는 게 한전의 입장이지만, 사업 추진에 차질이 생긴 건 분명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세청은 북한산(産) 무연탄을 수입한 의혹을 받는 한전의 자회사 남동발전을 조사 중이다.  미국이 제재 위반을 빌미로 실력 행사에 나설 경우 모회사인 한전 역시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최악은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꺼내는 경우다. 제재 대상국과 거래한 제3국이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이다. 이를 발동하면 미국 내 사업 기반이 흔들리는 건 물론이고, 달러화 조달도 어려워진다. 한전과 발전 자회사로서는 금융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마어마한 벌금도 부담이다. 지난 2014년 프랑스 BNP파리바는 미국의 제재 대상인 이란과 190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벌금 90억 달러를 물어야 했다. 한화로 10조원에 달하는 돈이다. HSBC 역시 19억2000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라트비아 ABLV 은행은 올 2월 대북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미국 금융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신용등급 하락도 걱정스럽다. 이미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5월 한전의 부진한 실적이 신용도에 부정적이란 진단을 내놨다. 여기에 ‘불법의 탈’까지 씌워지면 신인도가 더 훼손돼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전으로서는 고의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최선이다. 기업은행은 2013년 1조원 규모의 이란 자금 불법유출 사건에 연루됐다. 하지만 미국 연방 검찰은 의도가 없는 과실로 보고 사실상 기업은행에 ‘면죄부’를 줬다.

연이은 악재는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불과 2년 전인 2016년 5월 6만3700원으로 최고점을 찍었던 한전 주가는 지난해 말 4만 원대가 붕괴했다. 이후에도 정부의 탈원전 움직임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여파로 줄곧 내리막길을 탔다. 이젠 3만 원대마저 무너질 위기다. 한전 주가는 7일 오전 11시20분 현재 3만550원에 거래되고 있다. 한전 주가가 3만원 아래로 내려간 건 2013년 11월이 마지막이었다.

전망도 밝지 않다. 한전 사들인 전력비의 변동이 전기요금에 정상적으로 반영돼야 이익을 거둘 수 있는데 당장 쉽지 않아서다. 하나금융투자는 최근 한전의 목표 주가를 기존 4만6000원에서 4만3000원으로 내렸다. 유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유가와 석탄 가격은 전년 대비 두 자리 이상 상승했지만,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정지와 낮은 원전 이용률로 적자가 불가피하다”며 “올해 약 1조원의 영업손실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전 실적의 추가 악화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한전은 지난 2015년 7∼9월 3개월간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했는데, 당시 3분기 평균 전력판매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0.2% 하락하고 매출액 환산 시 256억원 감소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국 원전도 사업 방식이나 한국전력의 지분율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작다"고 내다봤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