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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은하 눈물흘렸다 3개월 방질출연정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동양방송-.동양방솜은 이제무거운 짐을 풀어놓고 조용히잠들려고 합니다.17년 우리의역사를 지켜 보아주신 애청자여러분!이제 동양방송의 17년역사가 막을…내리고 있읍니다. (울먹임) 1964년5월9일.혼란관 격동의 소용돌이속에서 고고의 소리를 울린후항상 여러분의 입과 귀와 눈이 되어온 동양방송…오늘,1980년11월30일 자정을 기해여러분 곁을 뗘나려 합니다.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입니다.낙은 5분이…남은 5분이너무 야속합니다.10분만 남았으면… 10분만 남았으면… (울먹임)아!이제 4분 남았읍니다.여기는 동양라디옵니다.다시 만날때까지 안녕히!여러분께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여러분!…이제 3분 남았읍니다.끝으로 동양라디오의 호출부호를 불러보겠읍니다.여기는 HLKC 639킬로헤르츠 동양…방…송입니다.』
80년11월30일 자정 막을 내린 TBC라디오의 마지막 10분간 황인룡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떨림과 울먹임외 연속이었다.
같은날 오후8시45분부터 방영된 TBC-TV의「고별TBC석간」 도, 9시30분부터 방송종영시간인 밤11시30분까지 방영된 마지막 특집프로그램도 이별과 아쉬움이 뒤범벅된 것이었다.
이날 마지막프로에 출연해 『아직도 그대는내사랑』을부르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린 가수이은하양은 계엄당국의 「고별방송지침」 을 지키지 않았다하여 3개월간 방송출연정지를 당했다.
방송통폐합조치에 따라 TBC가 KBS에 횹수된다는 소식이 사원들에게 알려진 것은n월n일 아침이었다.이날 아침 출근한 기자들은 『회사측이당국으로부터 12일 오후 늦게통보받았다』 는 놀라운 소식을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14일 방송협회의 자울결의란 형식을 통해 현실로 확인되었고 그 확인된뉴스는 기자들에게 엄컹난 충걱을 주였다.
전야의 상황에 대해 동양방송간부였던 K씨의 증언.
『l2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홍진기회장이 보안사에 불려갔읍니다.무슨 일인가해서 회사간부들은 사장실에 모여 불안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지요.
11월초부터 다시 언론통페합이야기가 나봤읍니다만 그때는TBC등 민방이 없어지리라는얘기는 없었읍니다. 8일인가 9일째 TBC담당 모기관원이 TBC가 KBS로 넘어갈것 같다는 귀뜀을 해줬지만 「그건 옛날이야기」 「잘못된 정보일것」이라고 여길 정도였으니까요.나중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보안사령부에 불려간 홍회장은 「TBC포기각서에 도강을 찍으라」는 강압적인 요청을 받고 「나는 사주가 아니라 그런 결정을 할 처지가 아니다」 며 버티었다는 것압니다. 그러자 보안사측에서 이병철회장을 모셔봤답니다.'
그래서 결국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게됐다는 것입니다.포기각서를 강요하던 사람이 젊은 영관급 장교라 얘기할 상대도 아니었고 일방적인 요구뿐이어서 협의같은 것은 아예통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여하튼 그날밤9시쯤 두분 회강께서 이종기신앙왈보사장과 홍두표TBC사강 두사람을 불렀읍니다.
이회장은 두사장에게 「TBC가 KBS로 홉수된다.흔들리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해서 이어려움을 극목해야된다」 고 통보경 당부를 하셨답니다.뒤에두사장은 희사로 돌아와 간부들과 사장실에서 대책을 논의하면서 통음을 하고 몇사람은통곡을 억제치 못했읍니다납
KBS의 TBC흠수통합은 이렇게 결정되고 TBC직원들은다음날 아침 이소식을 듣고 경악과 비통으로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후 3O일 고별방송이 나갈때까지의 상황에 대한 당시 TBC R부장의 증언.
『하루하루가 통분의 시간이었읍니다. 마치 가까운 육친의 m일장을 치르는 기분이었읍니다.
같은 운명의 DBS나 CBS쪽도 마찬가지였음니다만 기자들은 낮에도 술, 밤에도 술로비통한 마음을 달랬읍니다. 그때생겨난 말이 「통폐합주」 라는 것입니다.기자들뿐 아니라PD·일반사원들 모두가 그랬읍니다.
15일인가 이회장이 이런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자세를 흐뜨리지말고 마지막까지 프로그램제작에 모든 정성을 다하라」는 지시를 다시 내렸읍니다. 그러나 울분을 토하는 젊은 기자들의 마음이야 어디 그럴 여유가 있었겠읍니까.
이런 분위기에서 계엄당국은「통폐합이 갈된 조치라는 해설과 함께 그같은 내용의 시민반응을 취재해 TBC석간뉴스에 내보내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강박했읍니다. 「우리회사를없애는 것이 잘하는 조치  라는 내용을 방송하라니 누가 나서겠읍니까.
고민끝에 해설은 L부장이 맡기로 하고 시민반응취재는 보도국에서 얼굴이 전혀 방영된 적이 없는 남자식자수에게 통사정을 해서 뒤통수만 찍는다는 조건으로 이른바 연출을 시켜 프로그램을 만들어 검열을 받는데 성공7) 했읍니다.
이런저런 곡절을 겪으면서 모든 프로그램은 평상시와 변함없이 제작되고 방영되었읍니다.동양방송의 긍지와 자부심을 최후까지 살리겠다는 전사원의 굳은 의지와 노력의 결과있읍니다.
뒷이야기입니다만 쇼· 코미디등 오락프로의 제작은 정말 힘든 작업이었나봐요. 왜냐하면 연기자들과 제작스태프들의 침울한 기분과는 정반대로 명랑한읏음과 흥겨운 노래를 연츨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요.종방시간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피를 말리는 느낌이었읍니다.
26일 계엄당국에서 「고별방송에 관한 지침」 이란 것이 시달되었읍니다. 바로 전날 정오뉴스를 끝으로 보도방송기능이 정지된 CBS가 고별뉴스를 방송하면서 담당아나운서가 울음을 터뜨린 것이 생방송되어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지요. 이 지침에 따라 고별방송을 제작하자니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억제하느라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읍니다님
「고별방송지침」 이란 것은 한마디로 즉흥대사 삽입등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이나 표현을 일체 쓰지말라는 것이었는데 방송인들에게는 정말가혹한 주문이었다.
결국 마지막날인 30일 오후5시 TBC사기가 서소문사옥에서 내러지고 이 모습은 「TBC는 영원하리 라는 자막과 함께 이날밤 마지막 TBC석간의 앞머리에 방영되었다.
TBC와 비슷한 분위기속에서 막을 내린 CBS와 DBS는 각각 25일 오전11시30분 고별정오뉴스와 30일 오전8시 「DBS뉴스쇼」 를 진행하면서 고뎔방송을 내보냈다.
고별방송을 며칠 앞두고 TBC와 DBS에서는 기자들사이에 『이대로 방송을 빼앗길수는 없지않느냐』며 각각 통페합반대결의 및 농성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반발하면 화가 더 미칠지 모른다』 는 경영진의 간곡한 만류로 무산되고 말았다.
KBS로의 통페합 마지막작업은 재산의 인계인수였다.11월14일 통페합결의가 나온 직후부터 시작된 재산인계인수작업은 피해사들의 의사는 거의 묵살된채 KBS측의 일방적인 평가로 진행됐다.
TV· 라디오· FM· 부산국·로스앤첼레스국등 5개매체를 빼앗긴 TBC측이 가장 큰 손실을 입었다.모든 재산평가는싯가의 절반이하인 감정가격으로 매겨졌다.
인계인수는 KBS와 해당 피해사간의 매매계약형식을 취했지만 모든 것은 계엄사 (보안사) 의 지휘아래 이루어겼다.
그결과 TBC는 여의도시사옥 대지 (1만평) 1백억원 (당시 싯가 2백50억∼3백억원),건물 1백억원,방송기자재 및 차량 80억원등 모두 2백80억원으로 평가됐고 DBS는 건물및 방송기자재와 차량등 41억원으로 평가됐다.
다만 당초 2년거치 3년분할상환으로 되어있던 인수조건만은 은행채무를 KBS가 맡아 상계하는 방식으로 일시상환으로 수정됐다.
TBC측은 통폐합조치가 당초부터 강압·불법적이라고 봤기때문에 TBC의 영업권 문제는 일단 미뤄둔채 넘어갔다.이 문제는 강압걱인 상황이 해소되는 싯점에서 다시 제기묄문제로 유보됐던 셈이다.
TBC의 로스앤젤레스국은 80년]월당시에는 통폐합 대상에포함되지 않았으나 이것마저 저년9월 빼앗겼다. 이 채널은 현재까지 KBS방송사엄단이 KTE라는 이름으로 운영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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