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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김성태 말의 ‘정체성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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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바른 마음』이란 베스트셀러로 우리나라에서도 꽤 알려진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 민주당을 지지하며 성소수자 인권에도 목소리를 높여 온 사회심리학자다. 그런 그가 강의 중 사용한 단어 하나로 곤욕을 치렀다. “나 개인적으로는 남자와 남자 사이의 성관계에 대해 ‘역겨운(disgusting)’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느낌) 자체가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자신의 유명한 ‘도덕성 기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였다. 사람마다 도덕적 기준이 다르며,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취지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보수 결집 계기로 삼겠다는 건가

이게 사달이 났다. 한 학생이 그를 ‘호모포비아’로 교내 평등위원회에 고발했고, 교수는 한 달을 시달린 끝에 결국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어는 쓰지 말아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정서가 미국 사회, 특히 대학에서 얼마나 강렬한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두고 한 ‘성 정체성 혼란’ 발언이 우리 사회 PC 문제를 다시 건드렸다. 만약 미국 공화당의 리더가 이런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이트 교수의 사례로 봤을 때 역풍이 어떠하리라는 것쯤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트럼프가 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넷 공간은 와글와글하지만, 막상 발언 당사자는 태연하다. 실수는커녕 계산한 말처럼 보인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마저 “개인 소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엄호했다. 동성애 이슈를 보혁 논쟁 소재로 삼아 흩어진 보수를 결집하겠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이런 식의 이슈화가 과연 득이 될까. “병역 거부자가 군 문제를 자꾸 들고나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으면 나름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병역 거부’와 ‘군’은 대립 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성 정체성’과 ‘화장’의 문제를 섞었다. 당당하지 못했고, 메시지도 뒤엉겼다. 혐오를 이용해 지지층 결집의 계기로 삼겠다니. 친박과 홍준표가 남기고 간 ‘꼴보수’의 이미지만 어른거리게 됐다. 지방선거 패배 후 당의 개혁을 외쳐 온 김성태의 말에 오히려 정체성 혼란이 왔다.

미국에서 PC는 다인종·다원화 사회의 갈등을 막는 보호막 구실을 한다. 속마음을 숨겨야 하는 스트레스에 ‘할 말도 못하냐’는 식의 반발도 생겨났다. 트럼프가 선거에서 의외의 승리를 거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은? 낄낄대면서 ‘미국 여성 국무장관 강간’을 운운하고, 걸핏하면 ‘미투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방송 진행을 맡은 사회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조롱은 넘쳐난다. PC 감수성이 모자라서 문제이지, 넘쳐서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사건건 ‘올바름’을 따지는 미국 리버럴을 향해 보수들이 던지는 비아냥 중 하나가 ‘민감한 눈송이’다. 유난 떨지 말라는 조롱이다. 이런 전문용어(?)와 거리 먼 나 같은 ‘아재’의 머리에 PC 명제는 단순하게, 그러나 나름 편리하게 입력돼 있다. “다른 사람 배려해서, 말 좀 점잖게, 가려서 해라.” 우든 좌든, 일베든 워마드든 거친 말에 본능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사람들. 자유한국당이 파고들고 싶어하는 새로운 지지 기반이 바로 이런 사람들 아닌가. 혐오와 증오의 모퉁이에서 음습한 전의를 불태우는 세력들이 아니라.

다시 조너선 하이트. 그는 “감정은 코끼리, 이성은 그 위에 올라탄 기수”라고 비유했다. 정치적·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감정적 직관이 먼저고, 이성적 추론은 나중에 이를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김성태의 말은 과연 보수의 코끼리를 움직였을까. 아니면 냉소의 울타리로 더 깊숙이 들어가 버리게 했을까.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