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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휴가’에 대한 강박 버리니 '선물같은 설렘’이 두배"

중앙일보

입력

윤소라(36) 씨는 ‘여행은 준비할 때가 가장 설렌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격년으로 시부모님 혹은 친정 식구들과 함께 떠나는 휴가를 위해 윤씨는 휴가 한 달 전부터 각종 호텔 예약 사이트와 인터넷 카페 등을 뒤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최상'인 곳을 고르지만 정작 실망하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윤씨는 ”어떨 때는 내가 평가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르신들의 입맛과 컨디션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또 요즘에는 숙소 사진도 모두 포토샵으로 보정하기 때문에 실망하는 폭이 더 크다"고 말했다.

물론 이같은 호화 럭셔리 리조트를 택하면 실망할 확률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가격 대비 성능이다. [사진 써드홈 페이스북]

물론 이같은 호화 럭셔리 리조트를 택하면 실망할 확률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가격 대비 성능이다. [사진 써드홈 페이스북]

윤씨처럼  ‘휴가도 숙제’라는 강박을 느끼기다 못해  ‘예약없이 떠나는 즉석 여행’을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빈 방을 추려 특가로 판매하는 숙박 예약 앱들이 속속 등장하고, 자신의 위치를 기반으로 여행 계획을 짜주는 앱은 물론 동행자를 찾아주는 앱도 생겨나 즉석 여행의 경제적·심리적 부담도 줄었기 때문이다. '무예약 휴가'를 즐기는 이들은 "완벽한 휴가에 대한 강박을 버리면 작은 행운에도 크게 기뻐하게 된다"고 말한다.

회계사 서모(34)씨는 "숙소 예약을 확인하고 시간에 맞춰 교통편을 타고 움직이려면 계속해서 e메일과 스마트폰을 들여댜 봐야하지 않나"라며 "업무메일 좀 그만 보고 싶어서 휴가 온 건데 싶은 마음에 하루 이틀 정도 묵을 숙소만 예약하고 나머지는 현지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숙박 예약 앱의 땡처리 숙소를 자주 사용하는 류모(30)씨는 “퇴근하고 나서 평일에도 숙박 앱으로 이곳저곳을 검색하다가 가까이에 특가가 뜬 호텔이 있으면 차로 잠깐이나마 다녀온다. 회사 사정상 장기 휴가를 쓰지 못하는 데 이렇게 잠시라도 쉬고 올 때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도망친 것 같은 해방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여행 관련 앱 몇 개만 미리 다운 받고 간다면, 교통 수단과 숙박 모두 모두 장소와 시간에 구애없이 곧장 예약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화면 캡쳐]

여행 관련 앱 몇 개만 미리 다운 받고 간다면, 교통 수단과 숙박 모두 모두 장소와 시간에 구애없이 곧장 예약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화면 캡쳐]

‘우연’이 주는 선물은 더 크게 다가온다. 지난 4월 태국 방콕으로 휴가를 다녀온 박지원(28)씨는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또래 멕시코인 덕택에 여행 일정을 모두 바꿨다. 박씨는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기존에 예약한 숙소를 대부분 취소하고 외국인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묵었다"고 전했다. 그는 "나에게도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생긴다는 게 신기했다. 앞으로는 여행 일정을 넉넉하게 잡아 우연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영화 '비포 선 셋' 같은 여행지에서의 운명적 만남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위 사진처럼 옆 자리는 항상 비어 있을 수도 있다. [AFP]

물론 영화 '비포 선 셋' 같은 여행지에서의 운명적 만남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위 사진처럼 옆 자리는 항상 비어 있을 수도 있다. [AFP]

일 년에 서너 번,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를 찾는 강정희(40)씨는 지난해부턴 가족 여행에서도 굳이 좋은 숙소, 유명한 식당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강 씨는 "아무리 좋은 숙소를 예약해도 애들은 그저 스마트폰을 보고 자기 할 일을 한다. 반응이 좋지 않으면 서운하거나 짜증이 났는데, 이젠 지나가다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곳에서 밥을 먹고 그 근처에서 에어비앤비(공유 숙박 사이트)를 활용해 잠을 잔다. 꼭 유명하고 비싼 곳을 간다고 해서 그만큼의 행복을 얻는 건 아니더라”라며 웃었다.

조소희 기자 jo.so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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