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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최악 일정’ 받아든 김학범호...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중앙일보

입력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대표팀을 이끄는 김학범 감독. 양광삼 기자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대표팀을 이끄는 김학범 감독. 양광삼 기자

결과는 우려 그 이상이었다. ‘역대 최강’을 자부하던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대표팀이 예상 밖으로 꼬여버린 조별리그 일정때문에 근심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30일 공개한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 일정에 따르면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우리 대표팀은 9일간 조별리그 네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거쳐야 한다. 다음달 12일 바레인과 첫 경기를 치른 뒤 아랍에미리트(15일), 말레이시아(17일), 키르기스스탄(20일)을 잇달아 상대한다.

해가 진 뒤에도 섭씨 30도를 웃도는 기온과 80% 안팎의 높은 습도를 견뎌내며 이틀 또는 사흘 간격으로 강행군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조별리그에서 세 경기만 치르는 우승 경쟁국들과 달리 네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심지어 경기 순서도 ‘최악’이라 평가할만하다. 김학범 감독이 “예상보다 전력이 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힌 바레인이 조별리그 첫 경기 상대가 됐다. 사흘 뒤에는 중동의 또 다른 강호 아랍에미리트를 상대한다. 조별리그에서 가장 껄끄러운 두 팀을 초반에 내리 만나게 된 셈이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대표팀의 공격을 이끌 손흥민, 이승우, 황희찬(왼쪽부터). 뒤늦게 합류할 이들이 최대한 빨리 정상 컨디션을 찾는 게 중요하다. [연합뉴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대표팀의 공격을 이끌 손흥민, 이승우, 황희찬(왼쪽부터). 뒤늦게 합류할 이들이 최대한 빨리 정상 컨디션을 찾는 게 중요하다. [연합뉴스]

문제는 우리나라가 최상의 전력으로 두 나라를 상대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김학범호는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잘츠부르크), 이승우(헬라스베로나) 등 국가대표 공격수 3인방이 가세해 ‘역대 최강 공격진’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세 선수 모두 대회 개막 직전에 대표팀에 합류할 예정이다.

유럽파는 공히 시차와 전술, 경기 환경에 적응하는 절차가 남아 있는 만큼 초반 한 두 경기 정도는 결장하거나, 또는 뛰더라도 100%의 경기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상상하긴 싫지만, 이른바 ‘침대축구’에 익숙한 중동 두 팀과의 초반 맞대결에서 고전할 경우 금메달에 도전하는 전반적인 여정 자체가 꼬일 수 있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 와일드카드로 참여하는 공격수 황의조. 김학범 감독은 "황의조를 와일드카드로 선발한 건 철저히 현재 컨디션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 와일드카드로 참여하는 공격수 황의조. 김학범 감독은 "황의조를 와일드카드로 선발한 건 철저히 현재 컨디션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자연스럽게 축구팬들의 눈길은 손흥민과 함께 와일드카드로 공격진에 합류한 황의조(감바 오사카)를 향한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엔트리를 발표한 직후 ‘왜 황의조냐’는 논란이 불거졌을 때 김학범 감독은 “해외파 선수들이 제때 합류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대회 초반에 공격 흐름을 이끌어줘야할 선수가 필요해 황의조를 뽑았다”고 해명했다. 당시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꽤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공격수 한 명을 와일드카드로 선발한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김학범 감독의 남은 과제는 ‘황의조’라는 카드 자체가 적절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석현준(트루아) 을 비롯해 네티즌들이 거론한 다른 후보보다 경쟁력이 뛰어난 선수라는 사실을 결과로 증명해야한다. 바레인, 아랍에미리트가 까다로운 상대인 것은 맞지만, 이 정도 레벨의 팀들을 상대로 확실한 강점을 보여주지 못하는 공격수라면 결선 토너먼트에서 만날 다른 팀들과의 승부에서도 맹활약을 기대하긴 어렵다.

김 감독의 전략적인 선택도 중요하다. 한국이 속한 E조를 1위로 통과할 경우 D조 2위와 만난다. 일본 또는 베트남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E조 2위일 땐 F조 1위와 16강전을 치른다. F조에는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강호들이 즐비하다. 어느 팀을 만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E조 3위에 그치더라도 C조와 D조 3위와 견줘 성적에서 앞서면 16강행 진출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이 경우 A조 1위와 만나는데, 현재로선 개최국 인도네시아와 마주할 공산이 크다.

아시안게임 성적에 따라 손흥민을 포함해 한국 축구 기대주 20명의 병역 혜택 여부가 가려진다. 금메달이 아닌 모든 성적은 '실패'로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연합뉴스]

아시안게임 성적에 따라 손흥민을 포함해 한국 축구 기대주 20명의 병역 혜택 여부가 가려진다. 금메달이 아닌 모든 성적은 '실패'로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연합뉴스]

조별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경우의 수가 만들어진다. 16강에서 만날 상대 중 인도네시아가 가장 약한 팀인 건 맞지만, 의도적으로 조 3위를 노릴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데다 자칫 잘못하다간 조별리그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김학범 감독은 조별리그 통과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결승전에 오를 것인지까지 충분히 고려해 조별리그 시나리오를 짜야한다.

결과적으로 남은 건 ‘증명’하는 일 뿐이다. 일주일 남짓한 소집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전술과 팀워크를 완성해야한다. 부족한 부분은 현지에 도착한 이후 임기응변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이를 통해 감독이 선택한 스무 명의 선수와 전술이 ‘최고의 결정’이었음을 입증해야한다. 김학범 감독에겐 최근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이 황당하고 답답하겠지만, 빠져나갈 다른 방도는 없다. 김 감독이 직접 말 했듯이 결국엔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 뿐이다. 그게 아시안게임 2연패를 목표로 닻을 올린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 축구의 숙명이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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