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군 기지 평택 이전 충돌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범대위 측에 있다. 그중에서도 '미군 철수'로 철저히 무장된 외부 반미세력이다. 이들은 협의매수에 응하고 떠난 주민들의 빈집 등에 무단으로 머물면서 남은 주민을 선동했다. '미군의 평택 이전은 북한 선제공격과 아태지역에서의 침략 전쟁을 위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주입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보상을 더 받게 해줄 테니 협의매수에 응하지 말라'는 얄팍한 수법도 동원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권력이 투입될 리 없다'고 독려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번 이전만 막으면 주한미군 철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계산 아래 온갖 불법.편법을 자행한 것이다. 이런 세뇌 작업이 당국의 방관 아래 1년여 지속돼 일부 주민마저 이들에게 편승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수억.수십억원의 보상액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의 어이없는 행태가 이를 여실히 말해 준다.

정부가 큰 불상사 없이 강제집행을 끝낸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반성해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반미세력이 격렬하게 반발하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예고돼 있었다. 이런 만큼 정부는 주민들과 반미세력을 분리하는 강.온 정책을 용의주도하게 추진했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청와대는 팔짱만 끼고 있었고, 국방부.경찰은 권부(權府)의 눈치만 보면서 우왕좌왕했다. 국방부도 인정했다시피 고향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한(恨)을 달래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은 정말 문제였다.

미군 기지 평택 이전은 안보.경제적으로 우리 국익과 직결된 중대한 국책사업이다. 이 사업은 미군으로부터 5167만 평을 반환받고 362만 평을 공여하는 한.미 합의의 일환이다. 특히 수도 서울에 외국군 기지가 더 이상 주둔해선 안 된다는 것은 '국민적 합의'였다. 게다가 우리의 안보환경도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북한과의 대치, 일본과의 갈등에다 미.일 동맹의 강화, 일.중 화해 움직임 등으로 자칫하면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한.미 동맹의 강화가 요구되고 있고, 그 시금석이 바로 이 사업인 것이다.

협의매수에 응한 대추리 주민들이 공권력 투입 현장을 지켜보면서 "이전 반대 주민들은 외부 세력에 이용당했다"고 분개했다고 한다. 국민 전체의 의사는 외면한 채 선전.선동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망상임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