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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난민? 돈 벌러 온 사람은 심사 통과 못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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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호 23면

최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 500여 명이 난민 신청을 하면서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을 적극 수용하는 게 국제사회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난민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담은 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28일엔 서울 도심과 전국 주요 도시에서 난민 수용 반대 집회도 예고돼 있다.

유엔난민기구 신혜인 공보관 #한국 기준 엄격, 난민 인정률 4% #취업도 내국인 기피 업종만 가능 #죽음 무릅쓰고 국경 넘은 사람들 #오히려 갈등 피하려 외출도 꺼려 #국민 감정, 국가 위상 모두 챙기는 #현명한 해법 마련 함께 고민할 때

자칫 국론 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난민 수용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찬반양론이 강하게 부딪히고 있는 가운데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신혜인(38) 공보관을 만나 난민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기본 입장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세간의 우려를 조목조목 묻고 그에 대한 설명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신혜인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공보관이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난민을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것은 자비나 연민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신혜인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공보관이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난민을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것은 자비나 연민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논란의 핵심은 뭐라고 보나.
“두려움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이질감에서 비롯된 공포가 짙게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나마 언론을 통해 많이 바로잡히긴 했지만 여전히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적잖게 유통되고 있다. 난민에게 엄청나게 지원해 준다는 등 조금만 검색해 봐도 가짜 뉴스라는 걸 알 수 있는데도 싫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 믿고 싶은 정보로 받아들이는 듯싶다.”
가짜 난민 아니냐는 의혹이 가장 크다.
“한마디로 가짜 난민은 있을 수 없다. 난민 신청자거나, 난민이거나, 난민이 아닐 뿐이다. 심사 결과 난민이 아니라고 판명되면 곧바로 본국으로 송환된다. 그래야 진정한 난민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다. 난민을 정의하자면 종교·인종·내란이나 정치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자국을 떠나 국제적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경제적 목적이나 학업을 위해 온 사람은 당연히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4%에 불과하다. 전 세계 평균 38%와 격차가 커서 오히려 너무 심사가 엄격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잠재적 범죄자라는 우려도 많다.
“난민이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프레임 자체가 이미 차별과 편견을 갖고 있는 거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난민이나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범죄율도 상승했다는 통계는 없다. 그게 팩트다. 이런 논리라면 국내 소외계층이나 특정 집단도 얼마든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될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도 심한 듯싶다.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극단주의 무슬림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무슬림이 진정 위험한 종교라면 전 세계 18억 명이 믿는 종교일 수 있겠나. 한국에도 15만 명의 무슬림이 있지만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지 않았나.”
예멘 난민을 직접 만나봤다는데 어땠나.
“고학력에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영어로 기사를 접하면서 한국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놀라운 건 오히려 이들이 한국인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다. 가족도, 재산도 버리고 낯선 땅으로 떠나왔는데 조금이라도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송환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 괜히 시비라도 붙을까봐 밖에 나가는 것도 꺼리고 있더라.”
우리 일자리를 뺏는다는 반발도 적잖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난민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못하고 취업도 양식업이나 농장 등 허가된 직종만 가능하다. 대부분 한국인은 기피하는 곳이다. 어차피 일손이 부족한 업종이라 한국인 일자리를 뺏는다는 건 논리적 비약일 뿐이다. 취업이 어려운 젊은층이 ‘우리도 취업이 안 되는데 정부가 난민에게 취업설명회를 열어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난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이들이 취업해 돈을 벌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이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다.”
생계비 지원에 대한 반감도 크다.
“우리도 살기 힘든데 난민에게 웬 생계비냐는 불만이 많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거다. 난민법상 난민 신청 후 6개월이 지나야 취업 활동을 할 수 있고, 그때까진 1인당 월 43만원까지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보 부족으로 신청자도 매우 적고 심사도 까다로워 전체 난민 신청자의 4%만 혜택을 받고 있다. 이마저도 6개월이 지나면 중단된다. 예멘 난민 500여 명 중에도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번에 받아들이면 500명이 순식간에 1000명, 2000명이 될 것이란 걱정도 많다.
“난민이 한국으로 몰릴 거란 우려는 현실적으로 기우에 불과하다. 전 세계 난민의 85%는 인접국에 체류한다. 국내 상황이 진정되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예멘 난민들도 목숨을 걸고 수많은 나라를 떠돌다 우여곡절 끝에 왔듯이 머나먼 한국까지 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구조다.”
현실적 대책이 있다면.
“난민을 받아 공정하게 심사한 뒤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의 기본 책무다. 돌려보내면 죽는데 나 몰라라 하는 나라는 없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그리스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이 발 벗고 나서며 시리아 난민을 챙기지 않았나. 난민을 안 받으면 좋겠지만 어느 국가도 외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민감정도 잘 다독이면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도 부담이 가지 않는 해법을 어떻게 현명하게 마련할지 함께 고민할 때다. 심사 인력을 늘려 최대한 신속히 판정하고 그때까진 정부가 지역사회와 연계해 임시 거처 등을 마련해 주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무엇보다 정부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우려와 오해를 풀어줘야 불필요한 논란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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