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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때와 달라"···美, IOC 대북제재 면제 요청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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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폐회식에서 북한 렴대옥을 비롯한 북한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월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폐회식에서 북한 렴대옥을 비롯한 북한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이 ‘대북제재 면제 레이스’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제재망이 느슨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AFP통신과 영국 가디언 등은 26일(현지시간) 미 관료와 외교관 등을 인용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낸 대북 제재 면제 신청을 미국이 막았다고 보도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 3일 “북한 선수들이 올림픽 참가를 준비할 수 있도록 스포츠 장비를 북한으로 이송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안보리에 보냈다. 유엔 안보리는 통치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사치품이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물품의 대북 유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장비를 북한에 보내려면 예외를 인정받아야 한다.

제재 면제 판단 권한을 갖고 있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해당 요청을 회람했는데, 미국이 반대했다. 면제 허용은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반대하는 나라가 없어야 가능하다. 이에 대해 미 행정부 인사는 “우리는 비핵화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재의 완전한 이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이런 조치는 한국 정부가 잇따라 대북 제재 면제를 시도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 한국은 남북 간 군 통신선 복원 등 남북관계 개선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줄줄이 예외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관련 시설 개·보수 등을 위한 면제도 인정받았다.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면제신청도 조만간 이뤄질 예정이다.

한국이 안보리로부터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남북 간 대화 증진과 관계 개선이 북한 비핵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문제는 진전을 보지 못하는데 남북관계만 과속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한한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대행은 26일 남북경협 관련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제재 해제 이전에 성급하게 대북 경협이 앞서나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한다. 지난 2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 대사는 안보리 이사국들을 대상으로 제재를 엄격하게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헤일리 대사는 “우리의 친구들 중 제재를 우회하려는 나라들이 있다”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발신했다. 지난 23일 미 국무부·재무부·국토안보부가 공동으로 대북제재 주의보를 발령한 데도 제재를 바짝 조이는 것이 비핵화 조치에 머뭇거리는 북한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미 행정부의 판단이 깔렸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특히 동맹국인 한국의 제재 면제 신청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반대하지 않고 있는 미국이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IOC의 면제 신청에 제동을 건 것은 잇따르는 제재 예외 인정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평창 겨울올림픽 때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대북 제재 상 예외를 인정해주는 데 적극적이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지만, 북한과의 협상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제재 면제가 필수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굉장히 냉랭한 분위기”라면서다.

또 다른 소식통은 “사실 평창 올림픽 때도 북한의 참가를 위한 제재 면제 신청을 한국이나 미국이 하는 것은 이상하다는 말이 많았다. 북한이 예외를 요청하든, IOC가 요청하는 게 형식상 맞는데 한국과 미국이 나서서 대신 신청하는 모양새라, 안보리 내에서도 이상한 선례를 만드는 데 대한 우려가 나왔다”고 귀띔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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