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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사자 화해가 먼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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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0일 노태우 대통령과 「레이건」미국대통령회담을 설명하면서 「개스턴·시거」 미국무성 아-태차관보는『토론이 실질적이었다』고 말했다. 의례적 회담이라기보다 실질현안에 관해 이견까지 포함한 양측입장이 솔직히 개진됐다는 외교적 표현이다.
두드러진게 유엔총회연설을 통해 제시된 노 대통령의 동북아평화협의회 6자회담 구상에 관한 대조적 입장이다.
한마디로 미국정부는 6자회담 실현성에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생각만 그렇게 하고 있는게 아니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명백히 공표까지 한 것이다.
「시거」차관보는 『「레이건」대통령은 노 대통령 제의에 대해 전폭지지하며 할 수 있는한 돕고자 한다고 말했다』고 회담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전폭지지대상은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에 대해 최근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긴장완화 및 화해 노력이지 6자회담은 조금 다르다.
이점은 『두대통령은 그 같은 조치들이 성공하리라는 확실한 전망이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는 미국측 발표와 『현재로서는 이를 강력 추진할 의사가 없다』는「시거」차관보와의 문답과정에서 확실해졌다.
이 같은 미국입장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우선 남북한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한 당사자간에 해결되어야 한다는 게 한반도문제를 보는 기본시각이다. 당사자간 관계 개선의 바탕없이는 6자회담을 포함한 어떤 형태의 관계국 협의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레이건」 대통령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될 때 주한미군을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데 대해「시거」차관보가 『미국과 한국측이 북한의 위협종식을 확신해야하나 아직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럴 징후도 없다』고 지적, 철군은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강력히 해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노 대통령구상이 최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 제안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미국언론에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구상은 과거 미국에 의해서도 제기된 바 있는 것이다.
76년 「닉슨」 행정부시절 「키신저」국무장관이 유엔연설에서 같은 범위의 관계국회의를 꺼냈던 일이 있어 이 아이디어가 오래전부터 탁상 위를 오가는 공(구) 임을 알고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통보는 있었지만 협의가 사전에 없었다는 점이다. 미국으로서는 이 구상을 소화할 여유가 채 없었다는 것이다. 정상회담 하루 전 미국정부 고위관리는 노 대통령제안에 대해 『이의가 없다』 『전진적이고 건전하고 견실한 제안』 『유용하고 창의적』 이라고 말했고 「시거」차관보는 회담 후 『마음이 편하다』『문제가 없다』는 등의 표현에서 맴돌았다.
굳이 관계당국과의 정지작업까지는 안가더라도 양국정부가 비정규적 채널이 아닌 정상외교통로를 통해 충분한 사전협의를 벌여 파트너로서의 이해가 이루어졌다면 「이의가 없다」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좀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평가발언들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견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미국측의 회의적 평가의 근본적 배경은 소련이라는 요인이다. 미국정부는 최근 소련의 동북아정책 전환에 대해신경을 곤두세워왔다. 86년7월「고르바쵸프」의 블라디보스로크연설도 동북아시아정책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은 이래 소련이 이 지역 정치·경제문제에대한 적극참여 행동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미국은 한마디로 불안하다.
「태평양시대」로 예견되는 21세기를 코앞에 둔 이시기에 소련이 아시아에서의 적극적 주역을 맡겠다고 나서는데 대해 미국정부는 전반적 차원의 검토를 내심 활발히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변화 조짐 속에 던져진 6자회담은 따라서 미국관리들의 어정쩡한 표현에 그치는 대접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되고있다.
그렇다하더라도 노 대통령에 대한 미국측의 이번의 호의표시는 괄목할만한 것으로 보인다.
「레이건」 행정부는 지금 노 대통령이 국내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충분히 이해, 상응조치를 제공했다. 예방으로 그칠 수 있었을 방문을 오찬까지 포함된 「공식실무방문」으로 격상시키고 백악관 옥내기념촬영을「로즈 가든」회견형태로 바꾸는 등 「레이건」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최대한의 의전예우를 갖췄다 .한국의 국내사정과 한반도 긴장완화 등을 감안, 노 대통령에 대한 고무·격려가 필요했다는 판단이다.【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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