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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대학별 시험보다 내신이 적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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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전국 24개 대학이 2008년 대입에서 내신 비율을 50% 이상 반영키로 했다. 형식상은 자율 결정이다. 하지만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작품'이라는 시각이 많다. 김 부총리는 올해 초부터 주요 대학을 돌며 "내신 비율을 높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대학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갔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앙일보는 김진표 부총리를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다. 첫 번째는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교육부총리실에서 김종혁 정책사회데스크가 2시간 동안 만났다. 또 3일 오전엔 강홍준 기자가 만나 2008년 대학 입시와 관련해 추가 질문을 했다.

#3일 오전 추가 인터뷰

-대학들이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이기로 한 것은 교육부 압력 때문 아닌가.

"입시 요강은 각 대학이 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부 비중을 높이면 대학별 고사의 비중은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학별 고사 한 번으로 학생들의 12년간 교육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내신 비중이 올라가면 우수 학생들이 몰려 있는 자립형 사립고나 비평준화 명문고, 외고나 과학고 학생들은 진학이 어려워질 것 같다.

"자사고 3곳(민사고.전주 상산고.해운대고)의 졸업생은 780명 정도인데 대부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앞으로도 다 들어갈 것이다. 서울대에서처럼 입시 모집 유형은 다양하다. 지역균형 선발, 특기자 전형, 수능 성적, 대학별 고사 성적이 들어가는 일반 전형 등이다. 내신 성적이 안 좋아도 재도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수 학생은 다양한 채널 중 하나를 택해 (대학에) 갈 수 있다."

-갑작스레 내신을 올린다고 해 일선 고교가 충격을 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내신 비중 확대에 대해 일관되게 설득해 왔다. 지난해부터 1년 동안 전국 고교를 대상으로 2만5000개의 샘플을 모아 학생부의 신뢰도와 변별력을 검증해 왔다. 모든 과목에서 학생들의 성적이 정상 분포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 고교는 자신감을 가지고 학교 교육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내신 비율을 올리면 어떻게 될까.

"교육의 중심이 학교 안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교가 긍정적으로 바뀔 것을 기대한다. "

#지난달 26일 인터뷰

-그간의 교육정책은 뭐가 문제였나.

"너무 공급자 중심, 교육부 관리 중심이었다. 수요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교육관이 같은가.

"큰 흐름은 같다. 노 대통령은 교육에 관해 진보 쪽에서 보기엔 의아할 정도로 실용적이다."

◆ "노 대통령과 생각 같다"

-김 부총리의 '수요자 중심'과 노 대통령의 '평등 강조'가 같다는 건가.

"나도 (노 대통령과) 생각이 같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평준화 틀을 깨기는 어렵다. 박정희 대통령 때 자료를 보면 중3의 40% 정도가 정신병에 걸려 있다는 내용도 있다. 그래서 엘리트 교육 신봉자인 박 대통령이 평준화를 선택한 것이다."

-평준화로 실력이 떨어지지 않나.

"세계적으로도 평준화가 대세다. 일본을 제외하고 유럽이나 특히 핀란드 등도 고교 평준화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였다는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가다. 시험 봐서 학교에 들어가는 건 선진국 중엔 일본을 제외하곤 없을 것이다."

-미국에선 시험 보는 학교가 적지 않던데… 잘못 아는 것 아닌가.

"미국에서도 일부는 그럴 수 있다. 우리도 평준화지만 학교 선택권이 있는 지역이 있다. 약 10%의 학생은 100%의 학교 선택권이 있다."

-그런 곳이 어딘가.

"서울시를 제외한 15개 광역 시.도에서 평준화의 큰 골격은 유지하지만 선택권을 늘려 주고 있다. 완전히 100% 선택권을 주는 지역은 경기도를 포함해 6개 시.도다. 경기도에선 1순위부터 5순위까지 신청을 받고 통학 거리와 특기교육 원칙 등을 고려해 배정한다. 나머지 시.군도 전체의 40~60% 정도까지는 신청한 학교 중에서 배정한다."

-그걸 선택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6개 시.도는 선택권이 100% 보장돼 있다."

◆ "나는 시장주의자"

-경제부총리 때는 자율경쟁과 시장원리를 주장하더니 교육부총리가 된 뒤 달라졌다. 그땐 자사고를 늘리자더니 이젠 안 된다고 한다. 노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인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중앙일보가 앞장서서 그렇게 비판하지 않았나. 나는 경제 쪽에 있을 때부터 교육 여건을 개선해야 강남.북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국 16곳의 교육감에게 자사고를 몇 개나 만들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부산과 광주가 각각 1개, 서울은 3개 정도에 불과한데 그것도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학교 2~3개를 위해 정책을 추진하는 건 무책임하다."

-경제 쪽에 있을 땐 현실을 몰랐다는 뜻인가.

"교육부에 와 보니 자사고 운영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사고의 경우 등록금을 일반 학교의 세 배로 제한하고 있다. 국가가 사립학교 등록금을 정하는 게 옳은지.

"전체 학교의 45% 정도가 사립인데 맘대로 등록금 받으라면 어떻게 되나. 앞으론 고교까지 무상으로 가야 하는데 그럼 학비 부담이 커진다. 그걸 허용하는 건 교육의 책무를 다하는 게 아니다."

-시장경제 차원에서 경쟁력 있는 사립은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고 스스로 운영하게 해야 하지 않나.

"사립이 전체 학교의 10%가 안 되면 시장에 맡겨도 되지만 우린 그런 선택이 어렵다. 교육을 시장에 맡겨 사립이 마음대로 하게 하는 건 위험하다."

-스스로 시장주의자라더니 국가가 사립학교를 통제하는 게 시장주의인가.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이 다니는 게 사립학교인데, 등록금을 얼마 받아도 좋으니 풀어주고 가르치게 하자는 걸 시장주의라 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모든 사립학교가 정부보조금을 마다하고 자립한다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전체 사립학교의 10%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자사고를 인정해 경쟁력 있는 학교를 키우는 게 정상 아닌지.

"우선 정부가 공영형 학교와 같은 공립학교 모델을 추진하면서 사립학교가 그 모델처럼 가게 해야 한다. 등록금만 더 많이 받게 해주는 건 정부 책무를 집어던지는 것이다."

◆ "교실은 정상화되고 있다"

-한국 교육은 국가 경쟁력에 얼마나 기여한다고 보나.

"부시 대통령이 최근 연두교서에서 한국에 비하면 미국 학생이 이공계에 너무 안 간다고 걱정했다. PISA(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에서도 한국 고교 1학년 학생이 여러 가지 측정에서 핀란드와 함께 1~2위를 다툰다."

-부시의 연두교서에서 그런 내용은 본 적이 없는데.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인 것 같다. 평준화가 급격한 학력 저하를 불러왔다지만 OECD 전문가들은 평준화가 국력 신장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불만이 많다. 특히 중앙일보가 많다(웃음). 특유의 교육열에다 핵가족화에 따라 교육 욕구가 강해지고 수준이 높아지는데 (정부가)그걸 못 따라간다. 그래서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가야 한다."

-교육부가 자기 틀 안에 교육을 집어넣고, 수요를 통제하니까 갈등이 커진다는 비판도 있다.

"수요자의 요구와 필요가 교육정책에 투영되게 초.중등 교육을 바꿔 나가려 한다. 체계화된 방과 후 학교를 통해 학부모의 다양한 요구를 흡수하겠다. 대학생 가정교사인 멘토링도 확대해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교육의 질도 높이겠다."

-어떤 선생님은 자는 아이에게 '너를 깨우지 않는 게 돕는 거다'라며 놔두고, 또 어떤 선생님은 '학원에서 다 배웠지'하면서 넘어간다고 한다.

"고3까지는 그럴지 모른다. 고2 이하는 학생부 비중이 높아져 안 그런다."

-고2 이하는 교실이 정상화되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최소한 밖에서 내신 과외를 받아도 채점은 학교에서 하니까 학교 수업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 현장에서 이런 변화가 있다고 보고받았다."

◆ "선거 때일수록 교육 얘기해야"

-전교조 장혜옥 신임 위원장은 앞으로 계기수업을 더 강화하겠다는데.

"교육을 특정 교원단체의 정치적 이념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활용하는 건 막아야 한다. 계기수업은 학교장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전교조가 창립된 지 15년이 넘었다. 전교조의 활동은 참교육이었나.

"초기엔 촌지 거부 등의 활동을 펼치며 지지를 받았다. 이제는 교원들의 이익집단화하는 경향이 있어 걱정의 소리가 있다."

-열린우리당은 교육을 정치에 이용하는 게 아닌가. 실업계고 전형 확대와 광역학군 도입 시사 등 속보이는 정책이 많다.

"아니다. 선거 때일수록 더욱 활발하게 교육을 얘기해야 한다. 국민이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뽑아 줬으면 한다. 실업계 특별전형을 5%로 하느냐 10%로 하느냐는 논란이 있었던 건 의견수렴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다고 본다. 있을 수 있는 실수다."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은 절대 안 바꿀 것인가.

"입시지옥 상황이 해소되기 전에는 누가 와도 바꾸기 어렵다."

정리=강홍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 김 부총리는

김 부총리는 1947년생이다. 경복고.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13회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차관,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 인수위 부위원장을 하면서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2003~2004년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뒤 수원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해 17대 의원이 됐다. 2005년 2월 교육부총리에 취임해 현재 1년3개월째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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