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사실인가 조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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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탈주주범 지강헌·김동연·손동완 등 3명이 도봉산 숲 속에 숨겨둔 것으로 알려졌던 억대의 「보물」이 13일 자수한 김동연이 "매장사실 자체가 꾸며낸 거짓이었다" 고 진술함에 따라 보물이 사실인데도 죄가 추가될 것을 우려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아니면 처음부터 조작된 것이냐의 여부가 큰 관심을 끌게됐다.
김은 자수 직후 「보물사건」에 대해 "교도관 임제이씨를 매수하기 위한 미끼" "동료 죄수들을 탈주 모의에 가담케 하기 위한 조작"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 등이 지난 3월 경찰에 구속된 이후 가족 등에게 밝힌 보물 매장 내용은 이 같은 간단한 「조작 선언」만으로는 허구로 단정짓기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다.
우선 이미 훔친 것이 들통나고 행방마저 묘연해져버린 지금 자신들의 또 다른 범죄 사실을 추가로 인정하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는 「보물」에 아쉬움을 남길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은 검찰의 진술에서 "탈주자를 끌어 모으기 위한 미끼로 보물 얘기를 지어냈다"고 말했으나 탈주 계획 모의가 시작되기 두 달여 전 이미 보물 얘기를 누나 동자씨 (37·가명)에게 상세히 털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이 탈주 계획을 처음 들은 것은 성동 구치소에서 영등포 교도소로 이감된 6월말께.
그러나 김은 경찰에 구속된 직후인 지난 4월초 면회 온 동자 씨에게 이미 금품을 턴 경위와 파묻은 시간, 내용물, 금품을 담은 상자 (해물 보관용 스티로폴박스) 등에 대해 상세히 얘기한바 있다.
또 추후 교도소 수감 중 알려준 매장 위치에 대해 동자 씨가 "잘 못 찾겠다"고 얘기할 때면 "우이동∼방학동간 도로변 방범초소 뒤편에 그 집이 있다"며 입회 교도관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집」이란 암호까지 사용하며 답답해했다.
김은 심지어 "새벽 4시쯤 현장에 가 묻었으며 현장 숲 속에서 방학동 주택가의 불빛이 보이는 위치" 라면서 불빛이 보이는 각도까지 손으로 가리켜준 것으로 동자 씨는 진술했었다.
교도관을 꾀거나 탈주 범을 모으기 위한 연극을 친누나에게까지, 그것도 탈주 계획 훨씬 이전에 연출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은 또 지난해 대전 교도소에 함께 수감됐다 출감한 주 모씨 (39)를 통해 동자 씨에게 "보물을 찾아 내 몫을 받은 뒤 변호사 비용에 쓰라" 는 요구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하나 이들이 누나 동자 씨와 임 교도관에게 알려준 매장 현장이 등산로 등 사람이 다니기 쉬운 정상적인 길이 아닌 다소 험한 곳에 위치, 사전에 가보지 않고는 현장 모습을 실제와 똑같이 묘사해줄 수 없는 곳이란 점이다.
즉 소중한 보물을 묻은 뒤 다시 찾아올 것을 염두에 두고 세심히 기억해야 제대로 찾을 수 있을만한 곳으로 상상에 의한 현장 설정은 불가능하다는 것.
김은 또 진술에서 탈주 당일 신촌으로 갔다가 봉원사에서 집결했다고 밝혔으나 지난 9일 새벽 서울 한남동에서 붙잡힌 한재식 등 3명은 8일 낮 탈주 직후 지씨 등으로부터 그린파크에서 모이자는 약속을 잘못 듣고 드림랜드로 가는 바람에 동료들을 못 만났다고 진술했다.
한씨의 말대로라면 김씨 등은 「보물 현장」에서 불과 4백m 떨어진 우이동 그린파크에서 만나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을 가능성이 크다.
탈주 당일 밤 김이 형 (47) 집에 전화를 걸어 "보물이 몽땅 없어졌다" 고 말한 점이 이를 강력히 뒷받침해준다.
교도관을 매수하기 위한 조작이었다면 굳이 탈주한 뒤에도 이 같은 전화를 가족에게 할 필요는 없으리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김이 유서 형식으로 써 지니고 있던 글에 쓴 "달러 문제 (「보물」을 지칭한 듯) 는 없었던 일로 해주시고…. 그냥 해본 소리구요"라는 대목도 명쾌하게 조작임을 밝히는 표현이 아니어서 석연 찮은 점을 남기고있다.
특히 김동연은 탈주 범들 가운데 제일 형이 가벼운 데도 지 등과 어울려 탈주했으며 탈주 후 계속 자수를 권유한 것이 보물을 찾기 위해 탈주했다가 이를 찾지 못하자 자수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갖게된다.
일부 수사 관계자들은 결국 이미 사라져버린 장물을 놓고 더 이상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고 형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 「없었던 일」로 미리 입을 맞추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있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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