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 석학에 '삶과 죽음'을 묻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삶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놓고 동서양 학자가 대담 했다. 예수회 신부이며 세계적인 죽음학자인 알폰스 디켄 일본 소피아대 명예교수와 한국 죽음학회 회장인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는 1일 서강대에서 만나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연세대 간호대학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방한한 디켄 교수는 3일과 4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인간의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강연한다. 강연은 일반인도 참석할 수 있다. 연락처는 한국죽음학회 02-2298-2691.

▶최준식 교수=일본의 대학에서 죽음학을 30년 가까이 가르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도 우리처럼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죽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였을텐데.

▶알폰스 디켄 명예교수=일본에는 1959년 소피아대(상지대.上智大)에 공부하러 처음 왔다. 나중에 철학 교수로 다시 와서 죽음에 대한 문제를 강의하겠다니까 주위에서 모두 말렸다. 일본에서 죽음은 금기시되는 주제라고 했다. 아무도 강의를 듣지 않을 거라는 얘기였다. 77년 첫 강의를 개설했다. 수강생 1000여 명이 몰려왔다. 소피아대에서 가장 큰 강의실은 800명밖에 수용할 수 없었다. 나머지 학생은 서서 들었다.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책도 썼다. 27권의 책을 냈다. 소피아대에서는 3년 전 은퇴했다. 지금은 일본 전역과 세계 각국을 돌며 강연한다.

▶최=일본에선 죽음 준비에 대해 가르치는 중.고교가 있다고 들었다. 우린 이제 일부 대학에서 생사학(生死學)을 가르치기 시작한 정도다.

▶디켄=90년대 초 NHK-TV를 통해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12주 동안 매주 한 번씩 강의를 했다. 그 강의가 일본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하고 죽음 준비 교육을 활성화하는 전환점이 됐다. 시청자의 관심이 매우 뜨거웠다. 그 강의 내용을 묶어 책을 만들었다. 한국에도 그 책이 소개된 것으로 안다(한림대 오진탁 교수가 번역하고 궁리출판사가 출판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 프로그램은 비디오로도 제작됐다. 게이오고교 등 일부 중.고교에서 비디오와 책을 강의교재로 쓰고 있다.

▶최=죽음 준비교육은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는 청소년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 10대 사망 원인 중 2위가 자살이다. 청소년 자살을 예방하려면 죽음에 대해 어릴 때부터 함께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과거엔 할아버지.할머니 등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집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죽음을 주로 사건.사고 등 뉴스로 접한다. 또 대부분 병원에서 사망하기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죽음에 대해서도 잘못된 생각을 하기 쉽다.

▶디켄=그렇다. 자살 문제는 일본에서도 심각하다. 하루에 94명이 자살한다. 연간 자살 사망자 수는 3만여 명이다. 자살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가족 등이 자살했을 때 남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슬픔뿐 아니라 죄책감과 창피함 등으로 인해 이중고를 겪는다. 자살은 아주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 소피아대에서 강의할 때 중학생인 아들을 자살로 잃은 아버지를 초청했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하는 강연을 학생들 모두 진지하게 들었다. 나중에 한 학생이 찾아왔다. "요즘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연을 듣고 나서 우리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최=죽음교육은 언제부터 하는 게 좋을까.

▶디켄=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 아이들이 대중매체나 만화로 인해 죽음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 그 이전에 죽음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 등을 가르쳐야 한다. 독일의 경우 죽음에 관한 중.고등학교용 교재가 20종이 넘는다. 대개 종교나 윤리학 교재로 이용된다. 일본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도쿄본부에선 매년 여름 전국 초.중.고교 교사들을 위한 세미나 등을 개최하고 있다.

▶최=일본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직접 만든 게 24년 전이라고 들었는데.

▶디켄=현재 지부가 일본 내 53개 시에 있다. 회원 수는 7000여 명이다. 가장 역점을 둔 활동은 죽음 준비 교육이다. 그것은 곧 삶에 대한 교육이다. 인간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사람들이 내게 왜 일본에 와서 사느냐고 묻는다. "평균수명이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라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대답하면 모두 웃는다. 하지만 이어서 "그런 일본 사람도 죽을 확률은 100%다"고 얘기하면 진지해진다. 우린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잊고 사는 것이다.

▶최=호스피스 운동도 열심히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선 의사들이 전혀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한 환자에 대해서도 병원 중환자실에서 끝까지 연명치료를 하게 만든다.

▶디켄=일본에서도 의사들이 말기 환자에게 '진실'을 밝히길 꺼려했다. 하지만 진실을 알려줘야 환자가 진정한 삶과 죽음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호스피스는 죽음의 속도는 조금 앞당길지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방법이다. 독일에선 호스피스 제도가 빠르게 발전했다. 어린이 전문 호스피스 기관이 7개나 된다. 집으로 찾아가는 호스피스 서비스 기관도 1300여 개다. 뮌헨대의 의대생들은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나 통증완화의료 과목 시험을 통과해야 졸업이 된다.

▶최=최근 일본 '삶과 죽음회'에서는 '예비 과부를 위한 준비교육'을 한다던데. 그것도 넓게는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의 슬픔을 치유해 주는 애도 상담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가.

▶디켄=여성이 남성보다 약 7~8년 더 산다. 남편이 죽었을 때 여성들이 느끼게 되는 슬픔과 공포.곤경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 남편이 죽으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고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다. 배우자를 사별한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를 겪는다. 유언을 제대로 남겨놓지 않아 가족이 나중에 법정에서 다투는 경우도 생긴다.

정리=김정수 기자

◆ 알폰스 디켄 교수=▶1932년 독일생 ▶일본 소피아대에서 신학 연구, 미국 포덤대 철학박사 ▶75년 소피아대 교수 취임 ▶82년 일본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창설 ▶제3회 글로벌 사회복지의료상, 전미(全美)죽음학재단상, 독일 공로십자훈장, 제15회 도쿄시 문화상 등 수상 ▶저서 '죽음준비교육'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등 27종

◆ 최준식 교수=▶1956년생 ▶서강대 사학과 졸업 후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학 박사 ▶92년~현재 이화여대 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현재 한국문화표현단 이사장, 한국죽음학회 회장 ▶저서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 등과 번역서 '사후생(死後生)' 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