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의 국정 고심, 내팽개친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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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과 관련해 열린우리당에 '대승적 양보'를 권고했지만, 여당이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이는 "청와대와 여당 간에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일과성 해프닝으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갈등의 양상이나 시기적 미묘함 때문에 노 대통령의 집권 말기 권력누수 현상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장악력 약화는 곧바로 공직사회의 동요를 초래하게 되고 국정 전반의 혼란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여당의 대응 방식은 전혀 성숙돼 있지 않았다. 물론 노 대통령이 사전에 여당 지도부와 의견을 조율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여당의 양보를 요구했으니, 여당에서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 권고한 당일 의원총회를 열어 일사천리로 거부 결정을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볼썽사납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고심이나 체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마치 대통령과 결별할 기회를 기다린 게 아니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지방선거나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인기 없는 현 정권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 의원의 상당수는 2004년 총선에서 노 대통령 덕분에 손쉽게 당선됐다. 또 국민이 열린우리당에 과반수 의석을 준 것은 대통령과 함께 국정운영을 책임지라는 의미였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대통령과는 따로 가겠다는 것은 염치없고 무책임한 행태다. 대통령이 야당인 한나라당과 손잡고 국정운영을 하라는 말인가. 원내 제1당인 여당이 "사학법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같은 법"이라며 대통령에게 대드는 상황에서는 초당적 국정운영도 불가능하다.

노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과 부동산값 안정, 빈부격차 완화와 연금 개혁 등 산적한 현안을 추진해야 한다.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대통령이 이런 주요 정책들을 제대로 수행해나갈 수 있게 튼튼히 뒷받침하는 것이 여당의 살 길이다. 대통령과 결별하는 식의 얄팍한 정치 술수로는 국민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