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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세계무대 도약의 계기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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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8서울올림픽 문화축전 중 미술부문의 기둥이 된 것은 두 차례의 야외조각 심포지엄과 국제야외 조각초대전·국제 현대회화전·한국현대미술전 등이었다.
이 4개의 미술행사를 치르기 위해 투입된 돈은 무려 90억원.
삼성·현대·대우 등 국내 굴지의 6개 민간재벌이 각 15억원씩을 출연함으로써 이루어진 이들 미술전람회는 그 내용이나 성격은 뒤로하더라도 우선 물량 면에서 일찍이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적인 것이었다.
『외형의 거대함에만 집착하던 물신숭배시대의 망령을 다시 본 듯 했다.』 한 미술인은 내용에 관계없이 맹목적으로 몸피를 키운 미술행사 전반을 이렇게 평했다.
올림픽기간 중에 펼쳐진 미술전시행사들을 바라보는 눈은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는 매우 양극적인 것이다.『우리 미술의 역사를 30∼50년 앞당기는 기적과도 같은 사건』으로 평가하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일껏 마련한 잔치 터를 모조리 남에게 넘긴 형편없는 청부행사』로 매도하는 시선도 있다.
올림픽미술제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논리는 국제전이란 교류의 장을 통해 우리 미술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철저히 닫힌 환경 속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 작가들에게 개방과 진출을 향한 자극의 요소를 제공하고, 특히 앞으로의 작업방향에 한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조각부문에서 66개국 1백 91명, 회화부문에서 64개국 1백 60명이 출품함으로써 참가작가나 작품 수에서 전에 없던 기록을 남긴 이번 미술제에 쏠린 대중의 관심은 가위 폭발적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이들의 관심이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 이상은 못되었다고 하더라도 향후 미술애호인구의 저변을 늘리는데 일말이나마 가능성을 예시해준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평상시에는 하루 평균5백∼6백명 선에 머무르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관람자 수가 국제 현대회화전·한국 현대미술전이 열린 기간 중에는 그 5배에 달하는 3천∼4천명으로 불어났고, 올림픽조각공원의 경우에는 올림픽 개막이후 불과 보름도 지나지 않아 연인원 1백여만 명이 다녀가는 일대성황을 이루었다.
참가작가 대다수가 출품작을 기증, 한국에서의 영구전시에 동의함으로써 올림픽이 아니고서는 생각지도 못할 미술전시상의 가시적 성과를 거둔 점도 이번 미술제가 갖는 긍정적 측면의 하나다.
그러나 이 같은 대규모 행사에는 의례 따르게 마련인 무리와 부작용으로 인한 부정적 측면도 지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째가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 주도의 수직적 운영으로 일관됐다는 점이다. 조직위 상부와 줄을 댄 한 두명의 인사가 전시회 조직 및 운영의 전권을 행사하면서 여론과 전문가들의 자문을 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전시회를 자의로 사영화 했다는 비난이 전시회기간 내내 떠돌았다.
특히「레스타니」를 제외한 국제 운영위원들이 자격마저도 의심스런 무명의 3류급 인사들로서 전시회가 갖는 국제공공성을 도외시하고 개인적 관계의 흔적을 남겼다는 일부의 비난에 주최측은 겸허히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록 기념성이 앞서는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번의 각종 미술전시회가 너무 성격 없는 것이었다는 지적도 음미해야할 대목의 하나다. 중심주제 없는 전시회는 관람객들에게 여기저기서 잡동사니를 끌어 모은 채「메시지 없는 장식적인 미술」만을 강요하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전시회의 편향성도 문제로 꼽힐만하다. 세계 미술의 흐름과 현주소를 조명한다는 취지아래 소련 및 동구권의 작가들까지 광범위하게 초대, 외형을 그럴싸하게 꾸밀 수는 있었다고 하나 내용은 한마디로『이른바 서구제 1세계 현대미술의 맥락 내에 들어오는 작가들로 전체를 구성한 지극히 편향적인 것』이었다.
중국·인도를 포함한 동남북 아시아·아랍·아프리카 등이 제외된 것도 전시회의 취지를 무색케 한 예의 하나다.
이와 관련, 이번 미술제가 남긴 교훈으로 소중하게 되새김해야할 것이 주체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비용으로 애써 잔치를 벌여놓고도 정작 주인은 도망가버린 격』이었다는 게 많은 미술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또『들여와 보는 것에만 공력을 들였지 우리 것을 내보이는데는 너무 인색했던』「밑지는 장사」의 차원으로 미술제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번 미술제는 우리의 빈곤한 미술적 자산을 불러주고 작가들의 닫혀져있던 창작의욕과 진보의 전망에 한줄기 빛을 던져준 귀중한 기회였음에는 틀림없다. 미술을 사회적 교섭으로 실체화하는 경험이 없었다는 점을 자각하고 이제부터는 확보된 작가와 작품의 보존관리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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