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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한 미술인들이 완주로 간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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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모악산을 병풍처럼 두른 전북도립미술관이 봄비에 젖었다. 공간사가 설계한 전시 공간은 관람객의 접근이 좀 어렵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외국 미술계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좋은 환경을 갖췄다.

"열댓 명이 할 일을 네 명이 하다 보니 여기 학예연구사 중에 병원 신세를 안 진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달 27일 전북 완주군 구이면 전북도립미술관 들머리. 미술관 사람들을 소개하는 최효준 관장 자랑에 손님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국제전인 '독일 현대미술의 단면'과 '게오르그 바젤리츠 판화전'을 보러 서너 시간씩 달려온 미술계 인사들은 1년반이란 짧은 시간에 일군 전북도립미술관의 전시기획력에 혀를 내둘렀다.

미술평론가 성완경씨는 "'바젤리츠 판화전' 이나 '요제프 보이스의 방'으로 꾸며진 특별전은 어디에 내놔도 빛나는 전시"라고 칭찬했다. 전시기획자 김순주씨는 "지역 미술관마다 특색있는 전시를 꾸리면 이렇게 전국 어디서나 보러 온다는 한 사례가 됐다"고 평가했다. 양인 갤러리 인 대표, 이지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강효주 필립강갤러리 대표 등 전시장을 둘러보던 전문가들은 "지역 미술관도 내용에서 차별화만 잘하면 관람객을 끌 수 있겠다"고 입을 모았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판화전’을 보러 전국에서 달려온 미술계 전문가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판화전'은 주한독일문화원과 독일국제교류처 지원으로 이뤄졌다.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작가로 꼽히는 바젤리츠의 구작 판화 82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판화라는 형식에 갇히지 않고 자유자재로 드로잉을 휘두른 바젤리츠의 필력을 즐길 수 있다. '독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에는 특히 백남준과 교류하며 아시아 무속의 정신을 작품에 반영했던 요제프 보이스의 유작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통일독일이 가까원진 시점에서 동독 지역의 생활물품을 모아 설치미술로 탈바꿈시킨 '보이스의 방'은 그대로 통독의 미래를 내다보는 작가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김순주씨는 "전시기획자로서 잘 꾸려진 보이스의 작품을 보면서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품을 어떻게 보존해야 저렇게 완벽한 전시가 가능할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4년 10월 건물만 덩그러니 문을 연 지 1년 반. 전북 지역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서려는 최관장과 학예연구사들의 노력이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 미술관 앞까지 대중교통이 닿지 않아 접근이 쉽지 않음에도 전시마다 관람객이 몰리는 힘이다. 4일부터 6월 25일까지는 서울에서 열렸던 화제의 사진전인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절망에서 희망으로'와 김중만.성남훈의 사진전 '슬픈 눈 맑은 영혼, 내일을 열다'가 이어진다. 이제 굳이 서울까지 가지 않고 집에 앉아서도 중요 미술전을 볼 수 있게 된 예향 전주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063-222-0097.

전주=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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