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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상 홍보… 소 알리기 바빴다 88기간 중 한국에서의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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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에 동구바람이 불었다. 그 중에도 소련은 7백80여명의 대규모 선수단 외에 여객선 숄로호프 호 인천항 정박, 대학생 관광단파견, 볼쇼이발레단·합창단공연, 한국계가수「루드밀라 남」「넬리 이」공연 등「조직적인 파상 홍보공세」로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과연 소련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올림픽기간 중 한국에서의 소련과 소련인 이모저모를 추적했다.
9월4일 오후7시 인천항에 입항한 소 여객선 미하일 숄로호프 호(1만2천7백98t·선장「니쇼프·니콜라이」)는 올림픽기간 한달 여 동안 인천항에 정박하며 독특한 임무를 수행했다. 모두 2백34명의 관광객과 승무원들은 여러모로 눈길을 끄는 활동을 벌였다.

<친선교류>
우리측의 환영식에 대한 답례로「니콜라이」선장(61)과「콜로비진」블라디보스토크시장 (49)일행은 9월9일 이재창 인천시장·조영훈 인천지방해운항만청장 등을 예방해 정중한 사의를 표했다.
소련 측은 이 자리에서『인천시와 블라디보스토크시 사이에 많은 교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소 측은 9월16일 이재창 시장 등 인천시의 각급 기관장·사회단체장을 선상으로 초대, 오찬을 베풀고 민속공연을 선보였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한 답례로 9월24일「콜로비진」 시장일행을 한정식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고 우의를 나누었다.
공식행사 외에 민간차원의 친선축구시합과 민속공연도 있었다. 소 측 제의로 숄로호프 승무원 팀과 인천 주안조기회(회장 조강호)팀간 축구시합이 9월24일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있었다.
이 친선축구시합이 비공개로 열려 아쉬움이 있자 소 측은 인천시민의 환대에 답례하기 위해 27일 인천 선원학교 강당에서 인천시민들에게 소련민속춤과 노래를 첫 공개, 공연했다.
이밖에도 선박대리점인 천경해운(대표 김윤석)이 선원일행을 초청해 만찬을 베푼 것을 비롯, 대우·대림·기아산업·제일제당 등 기업들도 공장초청 견학·기념품 증정 등 교분을 쌓았다.「콜로비진」시장은『한국의 관리·경제인들과 만나 유익했고 인천시민들의 환대에 불편한 점이 없었다』며『귀국해서 이를 상부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연해주 스포츠위원장인「일리나·아나톨리」씨(51)는『가까운 장래에 한·소간 스포츠·문화·경제교류가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며『한국에서 허락만 해준다면 귀국 후 요트를 타고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하기도.

<관광·산업시찰>
승무원과 관광객들은 입항 이튿날인 9월5일부터 인천시내와 서울 등지 관광에 나섰다.
이들은 처음 신변에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으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한국실정과 인천시민들의 자유분방한 생활모습을 알게되자 우리측의 신변보호를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만큼 변화를 보였다.
소련 인들이 주로 찾은 관광지는 인천자유공원. 또 가전제품 점·의류상가·재래시장· 지하상가·교회·성당 등을 자유롭게 나들이하며 쇼핑도 즐겼다.
이들의 쇼핑은 청바지·브라우스·화장품·카셋·라면·인형·과일 등 구입품도 각양각색.
특히 전자제품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나 돈이 없는 듯 별로 사지는 않았고 이들 제품이 모두 한국산 이라는 설명에 무척 놀라는 표정들.
관광객들 중에는 인천 내리 교회와 답동성당을 관심 깊게 둘러보았고 자유공원을 찾은 「체르미쇼프」씨(50·연해주 의원)는「맥아더」장군 동상 앞에서 6·25에 관한 우리측 안내원설명에『6·25가 북침된 것이 아니냐』고 되물어 한때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또 안내를 맡은 나기준씨(64·효성동 383)집을 방문해 한국생활양식을 샅샅이 살폈고 술집에도 들러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도.
23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견학 때는 한국근로자의 근무시간·여직원 수·직원봉급·차 가격·입사1년 후의 봉급수준 등을 꼬치꼬치 질문하며 하나하나 메모를 했다.

<자료수집>
모스크바방송에 근무한다는 통역관 이규학씨는 26일 인천항 영접본부에 한국경제발전현황, 복지실태, 근로자의 임금, 근로시간문제, 한국의 정치·경제·사회관계자료 등을 5일 출국 전까지 구해달라고 요청해 주목.
이씨는 이 같은 자료요청에 대해『귀국 후 하바로프스크 지역지식보급협회(회원수 3천 여명)회원 중 3백 명을 대상으로 할 한국방문·견문기 강의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고 밝혔다.
이씨는 또 ▲현 체제아래서 남북한 대통령 총선거를 실시한다면 북한을 지지하는 남한국민이 몇%나 되겠나 ▲미군의 한국주둔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은 어떤가 ▲한국의 김영삼·김대중씨가 단일화되었으면 야당이 대통령이 됐을 것 같다 ▲김대중씨에 대한 국민지지율이 어느 정도냐 등 정차관련사항을 우리측 관계자들에게 묻기도 했다.

<홍보활동>
입항 5일 후인 9월9일 소 관광객들은「고르바초프」당 서기장의 연설문 등 소련선전책자를 배 밖으로 반출해 인천시내에 뿌리려다 우리측의 설득으로 중단했으나 다음날 한 승무원이 시내 관광을 하면서 신흥동 대우전자대리점에 들러 선전 책 1권, 노점상에게 3권을 줘 당국이 회수했다.

<주민인상>
『호화여객선 숄로호프 호가 관광객을 싣고 인천항에 한달 이상 머문다는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나라가 크니까 소련인 들의 씀씀이도 커 한 대목을 기대했었지요. 그러나 기대는 고사하고 눈요기만 하며 값을 어찌나 깎는지 놀랐어요.』
숄로호프 호가 정박한 부두근처 인천시 신포동 S잡화상주인 이경숙씨(36·여)는『물건구입은 품질보다 그저 값싼 것만 골랐고 값도 처음 맞는 소련 인이라 후하게 불렀는데 너무 깎아 민망할 정도였다』고 직접보고 느낀 소감을 말했다.
이씨는 자기가게에 하루 10여명의 소련관광객·승무원들이 들렀으나 어린이옷을 보고 갖고 싶어 몇 번이고 만지면서도 호주머니만 뒤적이다 그냥 가 한달 동안 소련인 들에게 판 매상은 20만원이 채 안 된다며 웃었다.
이런 점을 보아 아마도 돈이 없든지 아니면 어떤 통제를 받기 때문인지 궁금하다는 이씨는『그들이 소련담배를 한 갑에 5백 원씩 받고 팔고 모스크바올림픽 기념배지 세트를 갖고 나와 3천∼5천 원씩 행인들에게 파는 것을 보면 돈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인천시민의 한사람으로 특히 장사를 하기 때문에 소련사람들의 씀씀이를 유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는 이씨는 심지어 소련담배를 내놓고 옷과 물물교환을 하자고 졸라 어리둥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또 특이한 점은 점심이나 저녁을 시내 음식점에서 사먹는 것을 보지 못했고 식사시간이 되면 관광을 하다말고 서둘러 배로 돌아갔다고.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고 생맥주 집에 들러 맥주를 한두 잔 마시는 것은 간혹 눈에 띄었는데「외식만은 절대금지」인 것인지 이상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관광객·승무원들의 식품·선용품은 납품대행업체인 (주)고려(대표 강형기)를 통해 일괄구입.
주로 인천농산물공판장에서 반입된 식품류 중 가장 인기 있게 팔린 것은 컵 라면과 소주.
이씨는『소련인 들이 우리말로「라면」「소주」등을 말하는 것을 보면 한국의 라면과 소주가 소련인 들에게 인기 있는 것 같다』며『그렇지만 쇼핑은 1인당 외화사용한도액이 미화 1백50달러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인천=김정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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