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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희귀 조류 번식지 마구잡이식 사진 촬영…“문제 있다”

중앙일보

입력

윤무부(조류학 박사) 경희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4일 경기도 양주시 야산에서 촬영한 ‘청호반새’. [사진 윤무부 교수]

윤무부(조류학 박사) 경희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4일 경기도 양주시 야산에서 촬영한 ‘청호반새’. [사진 윤무부 교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로 손꼽히는 ‘청호반새’. 예로부터 ‘복과 행운을 불러다 주는 길조’로 통한다. 희귀 여름 철새인 청호반새가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에 둥지를 틀었다. 이곳은 요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때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사진작가들은 청호반새 둥지 코앞에 설치한 대형 천막에서 1개월이 넘도록 온종일 진을 치다시피 하고 있다. 이와 관련, 희귀 조류 번식지에서 이뤄지는 마구잡이식 사진 촬영은 생태환경 훼손 행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청호반새 둥지 틀어 #직경 10여㎝ 정도 크기 흙구멍 뚫고 번식 중 #둥지 10m 앞 대형 천막 설치 돼, 북적북적 #온종일 아마추어 사진작가 카메라 들고 촬영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대형 천막 철거해야”

지난 8일 오후 5시쯤 양주시 외곽의 야산. 왕복 2차로 도로에서 1㎞가량 산길로 들어간 군부대 철조망과 인접한 곳. 산속인 이곳엔 검은색 차양막으로 된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다. 길이 10m, 폭 2m, 높이 2m 규모로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게 돼 있다. 이곳엔 의자가 마련돼 있고. 의자 앞엔 직경 30㎝ 정도 크기의 구멍 9개가 뚫려 있다. 의자엔 고성능 카메라를 든 아마추어 사진작가 4명이 앉아 10m 앞 흙 절벽에 난 구멍을 주시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10m 앞에 사진촬영용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10m 앞에 사진촬영용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10m 앞에 사진촬영용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다. 천막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10m 앞에 사진촬영용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다. 천막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청호반새가 앉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든 나뭇가지 조령물이 앞쪽에 보인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청호반새가 앉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든 나뭇가지 조령물이 앞쪽에 보인다. 전익진 기자

높이 7∼8m 수직 흙벽 상단부에는 청호반새가 둥지를 튼 직경 10여㎝ 크기의 흙 구멍이 뚫려 있다. 최근 알을 부화시킨 후 새끼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청호반새 둥지다. 둥지에서는 파란색 깃털을 지닌 22㎝가량 크기의 큼지막한 청호반새 한 마리가 곤충으로 보이는 먹이를 물고 드나드는 모습이 순식간에 목격됐다. 청호반새가 모습을 드러내자 “찰칵찰칵” 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조용한 산 중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웅성웅성하는 대화 소리도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의 청호반새 사진 촬영은 해 질 무렵까지 계속됐다.

지난달 24일 이곳을 생태 탐방한 윤무부(조류학 박사) 경희대 명예교수는 “먼 곳에서 혼자서 조용히 새를 관찰해야 조류의 생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사진촬영을 위해 청호반새 번식지 코앞에 대형 천막을 쳐두고 온종일 사진 촬영가들이 북적거리는 것은 아름다운 청호반새가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만든 둥지로 들어가는 청호반새. [사진 의양동환경운동연합]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만든 둥지로 들어가는 청호반새. [사진 의양동환경운동연합]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만든 둥지로 들어가는 청호반새. [사진 의양동환경운동연합]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만든 둥지로 들어가는 청호반새. [사진 의양동환경운동연합]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전익진 기자

윤 교수는 일본 홋카이도 흰꼬리수리 번식지의 경우 40m 거리에서 사진촬영 및 탐조가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여기에 더해 대화 소리 마저 내지 않기 위해 주로 혼자서 1인용 위장 텐트 안에 들어가 사진촬영을 한다고 했다. 윤 교수도 비슷한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윤 교수는 “희귀 조류 보호를 위해 둥지 앞 대형천막이 당장 철거돼야 하고, 관계 당국의 계도와 단속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호반새 서식지를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을 경우 수십 년 후면 청호반새도 크낙새처럼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 우려가 높다고 안타까워했다.

윤무부(조류학 박사) 경희대 명예교수가 조류 생태 탐사에 사용하는 1인용 위장텐트. [사진 윤무부 교수]

윤무부(조류학 박사) 경희대 명예교수가 조류 생태 탐사에 사용하는 1인용 위장텐트. [사진 윤무부 교수]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10m 앞에 사진촬영용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 흙벽에 있는 청호반새 둥지 10m 앞에 사진촬영용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다. 전익진 기자

현장을 답사한 이석우 의양동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청호반새 둥지 근처에서는 수년 전부터 여러 마리의 청호반새가 목격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둥지 앞에 나뭇가지를 묶어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 청호반새가 내려앉도록 유인하는 행위까지 벌어지고 있어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처럼 조류 서식지를 보호하는 가운데 생태탐방과 사진촬영이 이뤄지는 성숙한 생태탐방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몸 윗면이 광택이 있는 푸른색인 청호반새는 암수 색깔이 같다. 부리는 붉은색이며 길고 굵다. 둥지는 흙 벼랑에 깊이 40㎝가량 구멍을 파서 짓고, 매년 같은 구멍을 이용하기도 한다. 여러 개의 구멍이 이웃해 있는 경우도 있다. 5월 중순부터 4개의 알을 낳아 암컷이 홀로 19~20일간 알을 품는다. 겨울엔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지내다 이듬해 4월 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양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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