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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고흐의 속삭임, 침묵의 메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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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경 화가

전수경 화가

통화를 마쳤지만 전화를 끊지 말라 했다. 후드득 후드득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빗소리 때문이다. 친구는 숨죽인 채 그의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를 그대로 담아 주었다. 전화기로 들려준 그의 메시지보다 그 곁의 빗방울 부딪는 소리가 더 듣기 좋았다. 나는 한동안 우리가 나눈 대화의 내용을 잊은 채 단조롭게 반복되는 음향에 모든 의식을 내 맡겼다. 복잡한 세상사를 선명하게 주고받는 대화, 바로 그 곁의 배경을 발견하는 지점이다.

전화를 끊고 내 작업실의 등을 밝혔다. 곧 있을 전시회에 출품할 그림들을 위해 분투한 난장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널브러진 물감통과 붓들, 한쪽에 쌓인 습작 뭉치들…. 오로지 전시장에 반듯하게 걸리고 도록을 장식할 완성된 작품을 위해 달려온 흔적들이다. 세상은 전시회와 도록을 통해 잘 마무리된 작품으로 나를 인지한다. 대신 분탕질 되고 무질서한 그 과정을 모른다. 나는 캔버스에 잘 정리된 이미지로 나의 또 다른 모습을 가려온 셈이다.

전화통화의 배경음에 집중한 즐거움을 그림 그리는 과정에서 찾아본다. 커다란 장독 속 오래된 간장의 표면처럼 깊고 깊은 어두움을 게워내며 먹이 벼루에 갈릴 때 스륵스륵 소리를 낸다. 물감을 접시에 짤 때 엄마의 젖을 찾는 아기의 입맛 다시는 소리가 난다. 나이프로 묵은 물감을 캔버스에서 긁어낼 때 공산군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기관총 소리가 들린다. 묽게 갠 물감을 먹인 붓으로 장지(壯紙)에 그릴 때 근사한 신사가 숙녀의 외투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소리가 들린다. 이들 반복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꼬박 밤을 새우고 작업실을 어지럽힌다.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 1889.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 1889.

어두컴컴한 작업실 창 너머에 여전히 불을 밝힌 집들이 몇몇 남아 있고 멀리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의 불빛이 빗물에 반짝인다. 나처럼 잠들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도시는 온전히 잠들지 못한 것 같다. 129년 전 고흐가 자신의 마음병을 치유하기 위해 머무른 정신병원 병실에서 처음 한 것이 북쪽으로 난 창을 한밤중에 본 것이란다. 그때 창 넘어 그의 눈에 들어온 야경을 그린 것이 ‘별이 빛나는 밤’이다. 고흐는 이 그림에서 잠들지 못한 이들이 밝힌 창들을 놓치지 않고 몇몇 붓 자국으로 포착했다.

이 그림은 온 세상이 잠들고 침묵하는 시간에 깨어 있는 이만이 겨우 볼 수 있는 밤 풍경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밤은 모든 것이 멈춘 때이고 어두움으로 찬 공간이다. 그 어두움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해 들을 수 없기에 밤은 먹먹한 영역에 머문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어두움의 세계, 그것이 밤이다. 밤은 낮을 부각하기 위한 배경일 뿐이다.

그림에서 교회와 가옥들로 이루어진 마을은 정지된 모습이다. 마을은 밤에 잠들고 낮에 활성화되는 사람들의 세계이다. 그러나 자연과 천체는 요동치는 흐름에다 음향을 뿜어내는 모습으로 화면 대부분의 면적에 할애된다. 마을을 대담하게 가린 채 하늘로 꿈틀대며 치솟는 삼나무가 아득한 데로 신호를 보내는 것 같고 초목들이 파도치듯 구불대며 둘러싼다.

그 뒤로 언덕이 융기하며 넓은 하늘과 맞닿는다. 축젯날 폭죽같이 별들과 달이 동심원을 그리며 진동한다. 그들의 운행과 대기의 흐름이 서로 뒤엉키면서 소용돌이치는 하늘의 큰 조짐을 드러낸다. 홀로 깨어 있는 자만 그 어두움 속에서 움직임을 보게 하고 점점이 피어나 웅장하게 울리는 메아리를 듣게 한다.

고흐의 꿈틀대는 움직임과 메아리는 반복되는 붓 자국들로 이루어진다. 이는 분명히 감각되는 점선의 다발이다. 마치 자장자장이라고 되뇌는 할머니의 소리가 아이를 안심시키고 잠으로 이끄는 것처럼, 그리고 얼쑤 얼쑤라는 청중의 추임새가 공연자의 기를 살리는 것처럼 명료한 경험을 유발한다. 이런 반복된 소리는 메시지를 갖진 않지만 우리를 안정시키거나 흥을 돋게 한다. 광장의 한 모퉁이에서 빗소리를 기꺼이 전해 준 친구의 침묵 덕분에 일상에 가려졌던 내 감각이 일깨워졌다.

전수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