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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3.1운동 100주년, '金비어천가' 북한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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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㉒

용비어천가. 10권 5책의 목판본으로 한글로 엮은 최초의 책이다. [사진제공=국립한글박물관]

용비어천가. 10권 5책의 목판본으로 한글로 엮은 최초의 책이다. [사진제공=국립한글박물관]

조선 세종 때 만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첫 대목입니다. 최초의 한글 작품이라는 문학사적 가치가 높아 중·고교에서 한 번쯤은 꼭 배우게 되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 만든 이 작품의 열쇠는 ‘古聖(고성)이 同符(동부)하시니’ 에 있습니다. ‘옛날의 성인이 하신 일들과 부절(符節)을 합친 것처럼 꼭 맞으시니’라는 뜻이죠.

『용비어천가』는 이안사(목조)-이행리(익조)-이춘(도조)-이자춘(환조)-이성계(태조)-이방원(태종)으로 이어지는 전주 이씨 6명의 행적을 중국의 위인에 비견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주나라 무왕이 천명을 받아 은(상)나라 주(紂)왕의 죄를 치자, 사방의 제후들과 서쪽 오랑캐도 모여든 것처럼, 태조(이성계)가 정의를 부르짖고, 위화도에서 철군하자 백성들과 북적(여진족)까지 주위에 모여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용비어천가』에는 유비나 당태종 등 중국의 여러 위인이 등장하지만, 특히 주나라 왕실과 공통분모를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왜 주나라 왕실이었을까요? 궁금한 것은 또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6대조부터 시작했을까요.
『예기(禮記)』 에 따르면 천자는 7대, 제후는 5대까지 제사를 지내도록 합니다. 일반 제사를 따져봐도 통상 고조부(4대조)까지입니다.
따라서 세종이 굳이 6대조인 목조(穆祖) 이안사를 시작점으로 잡은 데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서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후 『용비어천가』 인용은 원문 대신 현대어로 풀어서 사용하겠습니다.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조선왕조 역대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제례. 조선이 주나라의 문화를 흡수하려고 노력한 대표적 사례다. [중앙포토]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조선왕조 역대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제례. 조선이 주나라의 문화를 흡수하려고 노력한 대표적 사례다. [중앙포토]

비록 여자 문제로 시작됐지만 천명(天命)이다!

“주나라 태왕(고공단보)이 빈곡(豳谷)에 에서 제업을 열었고, 우리 시조(목조 이안사)가 경흥(慶興)에 살으시면서 왕업을 이루었다. 태왕이 북쪽 오랑캐 사이에서 살 때 오랑캐가 침범하므로, 기산 밑으로 옮긴 것은 하늘의 뜻이다. (익조 이행리가) 여진족 사이에 살 때, 여진족들이 침범하므로, 덕원으로 옮긴 것도 하늘의 뜻이다.” (『용비어천가』 3~4장)

칭하이성에서 발원한 황허가 흐르는 란저우 일대. 주나라의 옛 조상들은 이곳에서 터를 잡았다 [중앙포토]

칭하이성에서 발원한 황허가 흐르는 란저우 일대. 주나라의 옛 조상들은 이곳에서 터를 잡았다 [중앙포토]

고공단보는 이를 중원에 보다 가까운 감숙성 위수(渭水) 인근 기산(岐山)으로 이동시켜 천하를 움켜쥘 기반을 마련합니다. 고공단보의 손자인 문왕 때는 은(상)나라를 물리치고 천하의 패권을 가져가죠. 이 때문에 고공단보는 주나라의 실질적 시조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주나라와 은(상)나라의 영역

주나라와 은(상)나라의 영역

『용비어천가』가 세종의 6대조 이안사를 시작점으로 잡은 이유가 바로 '이주'라는 테마 때문입니다.
이성계 집안은 본관(전주 이씨)이 말해주듯이 전북 전주에서 대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안사 때 변방인 함경도로 근거지를 옮기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용비어천가』의 저자들은 하늘의 뜻으로 묘사했지만 실은 한 여인을 둘러싼 사적인 원한 관계가 발단이 됐습니다.
이안사가 총애하던 기생을 전주 감영의 2인자였던 별감(別監)이 데려가면서 양 측간에 갈등이 일어나자 결국 고향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안사는 전주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했는데, 하필 그 별감이 삼척에 안렴사(按廉使)로 부임하게 된 거죠.

쌍성총관부와 고려 공민왕의 국토 수복

쌍성총관부와 고려 공민왕의 국토 수복

결국 이안사는 삼척보다 더 멀리 떨어진 지금의 함경남도 원산까지 옮겨 갑니다. 고려 국경의 최북단까지 간 셈이죠.
이 지역은 훗날 원나라 영토(쌍성총관부)로 흡수됐는데, 이성계 집안은 천호장이라는 원나라 관직을 맡으며 기반을 잡습니다. 즉, 이안사가 전주에서 동북면으로 이동한 것을 고공단보가 기산으로 이동시킨 업적과 동일선상에 놓은 것이죠.

세종 입장에서 주나라가 매력적인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고공단보가 왕위를 셋째 아들(계력)에게 물려줬다는 점이죠.
세종은 맏형(양녕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아버지 이방원도 마찬가지죠. 장자가 아닌 태종·세종 부자의 콤플렉스를 해결해줄 수 있게 됐으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유성운의 역사정치]

신화와 사실 사이를 넘나드는 무용담

『용비어천가』에는 '육룡'들의 영웅적 무용담이 펼쳐집니다. 신기한 이적도 양념처럼 덧붙여지죠.
5대조인 이행리가 적들의 추격을 피해 도망칠 때 두만강이 갈라지면서 길을 열어준다든지(20장) 4대조 이춘이 꿈에서 백룡을 도와준 뒤 “자손에게 경사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22장) 식입니다.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물론『용비어천가』의 주인공은 이성계입니다. 107개의 장 중에서 무려 65개에서 등장하죠.
솔방울 7개를 7발의 화살로 모두 적중시키는가 하면(58장), 말 위에서 호랑이를 오른손을 내려친 후 활로 쏘아 죽이기도 합니다.(87장) 또 위화도에서 회군한 뒤 개성에 입성할 때 화살을 쏘아 승리의 조짐을 점쳤더니 한 화살에 소나무가 부러졌다는(9장) 하늘의 계시도 받죠.
또한 이성계가 왕으로 즉위하자 변방의 여진족들이 모두 조선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거나, 술자리에서 이성계를 말할 때면 감동 때문에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미담들도 쏟아져 나옵니다.

사실 정통 유학에서는 이런 신화나 설화적 연출을 경멸합니다. 고려 때 김부식이 주도해 편찬한 『삼국사기』에서 단군설화를 비롯해 각종 건국 관련 설화를 대거 누락한 것도 이런 이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에서 이처럼 영웅담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만큼 조선 왕실의 정통성이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대풍수'에서 이성계(지진희). 고려보다는 여진족에 가까운 같은 면모를 부각시켰다. [사진제공=SBS]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대풍수'에서 이성계(지진희). 고려보다는 여진족에 가까운 같은 면모를 부각시켰다. [사진제공=SBS]

이성계 집안은 지방 관리와 벌어진 갈등 때문에 고향을 떠나 함경도 지역까지 떠돌아야 했던 정도로 세력이 미약했습니다.
비록 이자춘이 공민왕의 쌍성총관부 탈환 때 공을 세워 인정받았고, 그의 아들 이성계가 많은 무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변방 출신으로 벼락출세한 비주류에 불과했습니다.
조선의 건국 과정은 또 어땠습니까.
토지개혁을 둘러싸고 급진파(정도전·이성계)가 온건파(정몽주·이색)와 알력을 벌이다가, 여의치 않자 아예 왕조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대규모 민란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고, 집권 세력 간의 정치 싸움 결과였습니다. 개경 일대에선 여러 차례 피의 숙청을 단행한 이성계가 인심을 잃어 '성계탕'이라는 음식이 유행했다는 야사가 전해질 정도였죠.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조선 건국을 다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건국한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제1·2차의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안 그래도 탄탄하지 못한 왕실의 정통성은 더욱 약해졌습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이런 배경에서 제작됐기 때문에 '국정 교과서' 치고는 도를 넘어선 신화적 스토리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김비어천가' 북한과 접점 찾을 수 있을까

"병인년(1866)에 미국 해적선 ‘샤만호’가 대동강에 나타나 양민을 수탈하고 능욕하자…만경대의 한 젊은이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 밧줄을 건너지르고 돌을 굴려 ‘샤만호’의 앞길을 막았다. 젊은이는 대동강의 물때를 맞춰 화공작전을 세웠으며 평양성 사람들을 독려하여 이양선을 격멸하였다." (『금수산기념궁전 전설집』)

KBS 대하드라마 '찬란한 여명'의 소품으로 제작, 복원된 제널럴 셔먼호. [사진제공=KBS]

KBS 대하드라마 '찬란한 여명'의 소품으로 제작, 복원된 제널럴 셔먼호. [사진제공=KBS]

난세에 홀연히 나타난 이 영웅은 김응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6대조입니다. 묘지기로 살아가던 그는 신출귀몰한 작전을 펼쳐 미국의 해적선(실은 상선)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1948년 소련군을 배경으로 북한 정권의 리더로 등장한 김일성은 박헌영(남로당파), 최창익(연안파), 허가이(소련파) 등 경쟁자 그룹에 비해 인지도나 정통성 등이 압도적으로 우월하진 않았습니다.

북한의 세습 권력자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중앙포토]

북한의 세습 권력자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중앙포토]

게다가 세습을 하려니 더욱 난처해졌습니다. 후계자가 된 김정일은 아버지(김일성)처럼 항일유격활동을 내세울 수도 없었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북한에선 이른바 '백두 혈통'에 대한 우상화 교육이 전격 강화됐습니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나 각종 회고록에는 조선 후기부터 북한의 건국까지 주요 역사의 변곡점마다 김씨 집안의 탄생설화나 영웅담이 등장하죠.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 김일성의 청년시절이라며 사진을 올렸다. [사진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 김일성의 청년시절이라며 사진을 올렸다. [사진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1945년 8월 9일 김일성 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조국 해방의 성전에 총동원할 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었다…여러 지역을 해방하였으며 일제의 관동군과 조선주둔군을 도처에서 격멸 소탕하였다…우리 조국은 근 40년에 걸친 일제의 통치기반에서 해방되었다." (『김일성동지의 혁명활동 략력』)

"왜적을 무찌르는 손자를 보기 위해 백두산으로 가는데, 금빛 용마 위에 우뚝 앉은 옥동자를 보게 된다…새 위인들이 태어날 때에는 꼭 하늘에 새로운 별이 솟는 법인데 바로 그 날에 백두산 상공에 광명성이라고 부르는 새별이 솟았다는 것이었다…만경대 5대손을 김정일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금수산기념궁전 전설집』)

김일성이 1949년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된 사실을 담은 북한 문헌 '조선전사' 제24권. [중앙포토]

김일성이 1949년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된 사실을 담은 북한 문헌 '조선전사' 제24권. [중앙포토]

3·1운동도 예외는 아닙니다.

“만경대 일대의 주민들은 열렬한 반일혁명투사이신 강진석(김일성의 외삼촌)의 지도아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한결같이 떨쳐나서…김일성 동지께서는 여덟살 되시는 어리신 몸으로 거족적인 반일인민봉기 대렬에 참가하시여 보통문까지 갔다.” (『조선전사』)

“3.1 인민봉기의 불길은 먼저 평양과 서울에서부터 타올랐다. 평양에서는 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 선생님(김일성의 부친)의 혁명적 영향을 받은 평양 숭실중학교의 애국적인 청년 학생들이 주동적인 역할을 놀았다.” (『조선력사』)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23주기를 맞은 8일 평양시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 앞에서 평양 시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23주기를 맞은 8일 평양시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 앞에서 평양 시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중앙포토]

김형직은 1918년 중강진으로 이주한 만큼 1919년 평양의 3·1 운동을 주도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북한에선 실제 역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김비어천가'는 김씨 정권의 당위성과 직결되는 만큼 이런 내용에 일체의 수정이나 다른 해석을 용인할 수 없겠죠. 참고로 북한은 현대사의 시작점도 김일성 주석이 14세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을 때로 잡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민족대표독립선언서 자료 [사진제공=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민족대표독립선언서 자료 [사진제공=독립기념관]

정부가 내년에 100주년 행사를 남북공동으로 치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김씨 가문의 주체적 역할을 내세우는 북한과 근현대사의 공통 분모를 맞춰가는 과정이 쉬워보이진 않습니다.
북한에선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민족 대표 33인에 대해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론에 헛된 기대를 걸고 청탁과 구걸의 방법으로 조선독립을 이룩해 보려는 투항주의 분자들'이라고 비판합니다.

국가는 과거에 대한 공통의 기억을 기반으로 꾸려집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미국이 하나의 국가로 유지되는 것은 건국에 대한 동일한 기억과 자부심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내년 3·1절 공동 행사는 남북의 통일 가능성을 엿보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성운 기자·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pirate@joongang.co.kr

※이 기사는 최연식·이승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조선 건국의 정당화- 신화와 역사의 긴장』, 장인용 『주나라와 조선』, 김종군 『북한의 현대 이야기문학 창작 원리 연구』, 정교진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전략 및 특성 비교 연구- 지도자 우상화의 ‘신화적 사고’ 접근 유 · 무 비교분석을 중점으로』를 참고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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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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