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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유감없이 세계에 알렸다.|서울문화올림픽 결산 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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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메달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서울올림픽이 절정에 이른 느낌입니다. 지난번 개막식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야 이건 한바탕 난장의 문화축제로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을 겁니다.
경기장의 시합과 문화축전이 올림픽이라는 수레의 두 바퀴라는게 근래의 통설입니다.
서울올림픽도 예외가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한나라의 문화는 그 나라 국민의 정서적 총화다」라고 정의 내린다면, 문화올림픽은 경기장안의 냉혹한 근육질의 경연을 정서적으로 중화시켜, 「화합」이라는 올림픽의 본질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거지요. 올림픽을 수레에 비유했는데 그 수레를 끄는 주인은 주최국의 국민들입니다. 다시 말해 주최국의 문화로 올림픽을 감싸야된다는 말이지요. 그런 만큼 서울올림픽 조직위가 문화축전의 방향을 ▲한국문화의 세계화 부각 ▲한국 문화예술의 중흥 전기 마련 등으로 잡은 것은 적절합니다.
이는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것은 모두 보여주고 또 외국의 고급문화를 많이 들여와 우리 것과 접목시켜 보자는 걸로 해석됩니다.
아직 수치화된 점검도 없고 해서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이번 축전이 외국에 우리 문화의 이미지를 높여주고 또 현대물의 경우 국내 문화계에 상당히 신선한 자극을 준 것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잔치 뒤끝에 오는 허탈이랄까, 문화적 쇼크후의 일시적 공동화 현상은 하루 빨리 벗어야죠.
이런 점도 있습니다. 「문화향수권」 이란 게 있어요. 이건 기본권과 같은 성격입니다. 문화 올림픽이라는게 「진열장 속의 전시」가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동참해야지요. 이렇게 본다면 이번 축전에 대한 TV의 무관심에 가까운 중계외면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요즘의 경기중계와 비교하면 확연히 알 수 있잖아요.
예컨대 라 스칼라의 『투란도트』의 경우 관람료가 비싸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공연 훨씬 전에 매진돼버렸으니 보통사람들은 가볼 엄두가 안 났을 겁니다. 이걸 TV가 메워 줘야지요. 물론 신문은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지만.
그럼 전반적인 진행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요.
우선 「주제행사」가 없었다는 게 무엇보다도 아쉽습니다. 우리 문화란 이런 거다. 이것만 보면 우리문화의 속살을 느낄 수 있다. 뭐 이런 게 없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리랑』 좋잖아요. 이『아리랑』을 창극·현대무용·연극·영화·오페라 등 각 장르별로 공연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아리랑』 한 가지만이라도 딱 부러지게 외국인에게 반복, 누적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거죠. 감다할 정도의 일과성·일회성행사가 주류를 이뤘어요. 이건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문화의 홍수 속에 빠진 거라는 인상을 내내 못 지웠습니다.
-외국공연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주도한 것도 문제입니다. 라 스칼라다, 모스크바 필이다, 모스크바방송 합창단을 연일 신문·방송이 떡칠을 하니 이건 마치 남의 잔치에 온 것 같았어요.
-외국공연 주도 분위기 중 동구권, 특히 소련의 물량 공세에 대한 큰 호응은 여러 면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물론 이것을 사상적 공세라 볼 수는 없지만 요즘의 좌우논쟁도 있고해서….
감정적인 면이 없지도 않지만 4년 전 KAL기 피격 등을 상기하면 소련에 대해 너무 호들갑을 떨지 않았느냐는 거지요. 좀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련에 대한 호응은 그동안 금기시 되어 온 반쪽세계를 향한 강한 반사적 호기심의 결과라고 봐야 되겠지요. 볼쇼이나 모스크바 필이 갖고 있는 세계적 위명도 있겠고, 또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완화추세니까 그쪽에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예컨대 우수 외국영화 시사회의 경우 『데마』라는 소련영화가 호평을 받자 소련서 다른 영화 5편을 더 보낼 테니 상영하자고 제의해 왔거든요.
-아뭏든 대단한 소련바람입니다. 소음식전, 소사진전, 개막식서 소 선수단 입장 때 큰 박수, 볼쇼이나 모스크바방송 합창단 공연 때의 수많은 커튼 콜 등.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말도 들리데요. 「릴리」 미대사가 묘한 불평을 했다는 겁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소 발레공연에 참석해 분위기를 잡아줄 수 있는 거냐고. 미국 측의 상대적 소외감·불평한 심기를 노출한 거지요.
동구권 예술공연은 평론가들의 격찬이 이어졌지요. 우리가 봐도 열연이었습니다. 내용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갖는 선전성이 눈에 안 띄었어요. 공연 준비도 철저하더군요.
그러면 각 분야별로 살펴볼까요.
-국제연극제는 8월16일 브라질 마쿠나이마 극단의 『시카 다실바』로 막을 올렸죠.
6개 외국작품과 13개 국내작품이 참여한 국제연극제에서는 특히 폴란드 가르지니차 극단의 『아바쿰』과 그리스 국립극장의 『오이디푸스왕』 등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아바쿰』 은 우리가 처음 접해본 동구권 연극으로 인간적 고뇌를 그리고 있어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요소는 전혀 담고 있지 않았어요.
『시카 다 실바』는 주연 여배우가 노 팬티로 나와 숱한 낙수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죠. 브라질에서는 반라로 무대에 오르나 우리 나라에선 옷을 입힘으로써 작품성을 훼손했다는 말도 들려요.
일본의 가부키 『가네다혼 추신구라』도 작품외적 관점에서 주목을 끌었죠. 올림픽을 이용, 일본 스스로 2억엔의 거액을 들여가며 들여온 가부키가 국립극장에서 막이 오른 것이 국민적 감정을 자극한 것이지요.
국내 작품 중에는 창작극이 많았는데 외국단체의 작품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이에요.
-국제 무용제는 늦게 시작해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만 운영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운영위원회에서 너무 군림하고 있다는 비난이 많아요.
일단 참여단체를 결정했으면 그들의 재량에 맡겨야하는데 연습단계부터 간섭을 많이 하고있다는 거죠.
헝가리 기외르 발레단의 무대는 훌륭했다는 평이에요. 그들은 무대바닥을 다시 검은 바닥으로 만들게 하는 등 공연효과를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진지하게 임한 것이 높은 평을 받았지요. 그러나 미국 워싱턴 발레단은 연습도중 2장의 주연이 부상하자 총 3장의 프로그램 중 2장을 빼버리고 공연하면서도 사과 한마디 없었습니다.
-전통문화 예술의 전시와 공연은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어요. 한국의 미, 전승 공예전, 민속마당 등은 한국의 전통이 총동원 돼 한국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호응을 받았지요. 특히 놀이마당에서 매일 1백명씩의 외국인들이 함께 어울린 것은 우리 것을 체험적으로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국제 미술제에 있어서는 올림픽이 없었다면 이런 대규모 전시회가 가능했겠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양적인 면에서 우선 대단했어요. 66개국에서 1백90여점을 출품한 국제조각 심포지엄·국제 야외조각 초대전을 비롯, 국제 현대회화전 등은 세계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줌으로써 국내 미술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 것 같습니다. 초대된 외국작가들이 국내 전시회도 많이 갖고 화랑에서 이들의 작품을 다량 구입, 미술시장의 국제화에도 기여했지요. 이들의 작품가격이 국내원로의 작품가격에 비해 10분1밖에 안돼 국내 작품가격도 재조정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국제 미술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있었지요. 외국작가는 물론, 동반자까지 체재비일체를 지불하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도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수준급 작품을 건졌느냐에는 대부분이 회의적입니다.
-국제 음악제는 라 스칼라의 『투란도트』로 화려하게 막이 올랐죠. 43억원의 막대한 비용에다 2주일 걸린 무대장치에만 2억원이 들었어요.
성가에 걸맞게 12만원까지의 입장권도 금세 매진돼 공연당일 암표가 36만원까지 치솟았다는 소문도 있고요. 아뭏든 라 스칼라는 본고장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문화욕구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은 틀림없어요. 그러나 올림픽 문화행사에는 그네들이 알아서 꼬박꼬박 참가하고 있는 라 스칼라를 우리가 먼저 몸이 달아 20여억 원이나 주고 데려왔음에도 TV중계권조차 얻어내지 못해 1만여 명만 감상케 한 것은 당국의 무지와 국민 경시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요.
-대한민국 국악제는 결코 적은 양은 아니었으나 서양음악 프로그램에 비해 수준이 못 미쳤어요. 공연장에 외국인들은 거의 눈에 안 띄고 우리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공연이 형편없었어요.
모스크바 필하머니의 선율을 국내에서 감상한 것도 큰 수확이죠.
또 모스크바 방송 합창단이 『아리랑』 『그리운 금강산』 등 우리 민요와 가곡을 불러줌으로써 커튼콜을 10여회나 받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세계 합창제에서 마지막날 참가단체 전부가 모인 연합무대에서의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도 올림픽이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감동을 주었죠. 그러나 창작 오페라로 관심을 모았던『시집가는 날』은 국적불명의 실패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맹진사댁 경사』라는 우리의 소재를 세계적인 작곡가 「메노티」에게 맡겨야 세계적인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거였지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사대주의적 발상입니다.
-이번 문화예술축전 중 대중문화 쪽이 소외당해 아쉬운 감입니다. 우수외국영화 시사회나MBC 국제가요제가 고작이었으니까요. 세계 20개국에서 80년대 대표작 28평을 보낸 우수 외국영화 시사회는 소련 명화 『테마』를 비롯,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아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으나 객석이 5백석 밖에 안돼 일반 영화팬들은 접할 수조차 없었죠.
MBC 국제가요제는 예년행사에 비해 몇몇 인기 가수를 포함시킨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어요. 외국가수 공연장이 되는 바람에 국내가수가 소외 돼 국내가수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현대 토아트홀에서「50년대 이후 대표적 우리가요」페스티벌을 갖기도 했습니다.
국제펜대회도 적지 않은 화제를 뿌리며 진행됐지요. 일단 공산권에서 수준 높은 문인들이 대거 참여, 한국 문학의 국제성 획득에 발판을 마련한 것은 성과로 볼 수 있지요.
그러나 미국의 지나친 인권문제 개입과 민족 문학작가 회의의 펜대회 불참 결정은 크게 두 쪽으로 갈린 우리 문단의 현실을 더욱 첨예화 시켰습니다.
-국제 올림픽 학술회의는 역대 올림픽 행사 중 최초로 시도된 것이지요. 올림픽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세계적 석학들이 쏟아져 들어와 회의 중 발표된 논문도 많았고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귀중한 저서들도 많이 소개돼 국내 학술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특히 공산권 학자들도 대거 참여, 주목을 끌었는데 개막연설을 할 예정이었던 소련의「아이트마토프」 박사가 끝내 불참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아이트마토프」 박사는 「고르바초프」의 철학고문으로 소련 정치권 중심부에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 국내 보도진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거든요.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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