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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가장 긴 한 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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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대차는 그룹 출범 이래 '가장 긴 한 달'을 보냈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미숙한 사태 대응으로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들린다.

◆ 일요일의 '기습'에 손발 묶여=일요일이던 지난달 26일 아침 서울 양재동 본사와 글로비스.현대오토넷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현대차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검찰은 정확한 내부 제보를 바탕으로 비밀금고 내용물을 비롯한 각종 자료를 확보함으로써 현대차의 손발을 묶어놓았다. 검찰은 압수수색 사흘 뒤인 29일 현대차 수사를 김재록씨 수사와는 별도로 진행하겠다고 밝힘으로써 현대차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와중에 이달 2일 있었던 정몽구 회장의 갑작스러운 미국 출장은 결과적으로 현대차의 실수로 판명됐다.

현대차 측은 "글로벌 경영을 위한 예정된 현지 방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도피성 출국'이라는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정 회장 출국 이튿날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결국 정 회장은 출국 일주일 뒤인 8일 오전 귀국했지만, 이미 검찰은 정 회장 부자의 경영권 편법 승계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 사회 공헌 발표도 허사로=현대차 그룹은 19일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주식 등 1조원을 사회 공헌 기금으로 헌납한다고 발표했다. 파격적인 조치였지만 발표 시점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정 사장의 소환을 하루 앞둔 데다 검찰이 정 회장도 피의자 신분임을 밝힌 뒤였기 때문이었다.

사회 공헌 발표가 검찰의 사법처리 수위를 낮추기 위해 급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결국 검찰은 24일 정 회장을 소환해 다음날 새벽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고, 이틀을 고민한 끝에 정 회장 구속, 정 사장 불구속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대차가 25일 협력업체 상생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미 '사법 정의'라는 대세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현대차는 정 회장에 대한 구속 가능성이 커질수록 그가 그룹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위치를 강조하며 '글로벌 경영 위기' '적대적 M&A 가능성'등 위기론을 내세웠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대응이야말로 오너 지키기에 급급해 비상 경영 시스템 부재라는 약점을 스스로 드러냈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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