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충돌 사고에도 환자 살핀 구급대원…처벌 고민하는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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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한 교차로에서 발생한 구급차 사고에서 구급대원이 쓰러진 뒤 환자에게 기어가 상태를 살피는 모습 [사진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

광주의 한 교차로에서 발생한 구급차 사고에서 구급대원이 쓰러진 뒤 환자에게 기어가 상태를 살피는 모습 [사진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

2일 광주광역시 운암동의 한 교차로. 한 119구급차가 길을 비켜준 차량을 피해 가던 중, 교차로 오른편에서 달려오던 은색 스타렉스 차량에 부딪혔다. 충돌 전 구급차가 충돌을 피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핸들을 잠시 돌렸지만, 이것이 오히려 화가 된 듯 충돌 뒤 구급차는 균형을 잃고 한바퀴를 돈 뒤 넘어졌다. 이 사고로 차에 있던 환자와 구급대원들이 차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사고 직후 구급대원들은 길 위에 잠시 쓰러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잠시 뒤 정신을 가다듬고 환자쪽으로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한 대원은 고통이 가시지 않은 듯 환자쪽으로 기어가 이를 살폈다. 환자인 91세 여성은 다른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된 지 약 한 시간 뒤 숨졌다.

2일 오전에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교차로에서 발생한 119구급차 사고당시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 [사진 광주 북부소방서]

2일 오전에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교차로에서 발생한 119구급차 사고당시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 [사진 광주 북부소방서]

이 사고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 사이에선 “투철한 직업 정신이다” “의인이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광주 북부경찰서는 이 구급차를 운전한 소방서 직원을 5일 조사하기로 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구급차, 소방차 등 ‘긴급 자동차’는 긴급상황 때 신호ㆍ속도위반을 해도 되지만, 사고가 나면 처벌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도 난감한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안타까운 유형의 사고를 접할 때는 조사하는 입장에서도 매우 입장이 곤란해진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경찰청은 2016년 이같은 유형의 사고를 처리하기 위한 내부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이 지침은 구급차 사고에서 피해자가 전치 3주 미만의 경상을 입었을 때 선처할 수 있는 요건을 담고 있다. 긴급성과 정당성 등이 인정되면 입건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응급환자를 싣고 달리던 119 구급차가 교차로에서 추돌사고를 당해 옆으로 넘어져 있다. [연합뉴스]

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응급환자를 싣고 달리던 119 구급차가 교차로에서 추돌사고를 당해 옆으로 넘어져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 사건에선 환자가 숨졌다는 점 때문에 경찰도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이 환자는 호흡 곤란 증세로 병원으로 이송되는 중 사고를 겪은 것”이라며 “숨진 원인이 호흡곤란인지 교통사고인지 확인을 해봐야 한다. 아직 구급차 운전자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따지기엔 이르다”며 선처 가능성을 내비쳤다.

구급차에 부딪친 스타렉스 차량 운전자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스타렉스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며 “다른 차량에 가려 왼쪽 앞에서 구급차가 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실제 사고 장면을 보면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기다리는 차량이 줄 서 있어서 스타렉스의 왼쪽 시야를 가렸을 가능성이 있다. 이밖에 스타렉스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음주나 과속 등의 과실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구급차 운전자의 선처를 요구하는 게시물에 대한 동의가 잇따르고 있다. ‘광주 구급대원 경찰 조사 및 처벌 억제’라는 제목의 청원 게시물엔 1만5000명이 동의했고, 유사한 내용의 청원도 5일 현재 계속 올라고 있다.

한편 구급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와 대원 2명, 구급 실습생 한 명은 경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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