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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칼럼

일본 외교 3인방의 혈통이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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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노 대통령이 "내 임기 중에는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2004년 7월의 한.일 관계는 흔적도 없이 증발된 느낌이다. 일의대수(一衣帶水)의 한.일 관계가 어쩌다가 이런 파국을 맞았는가. 지금 일본의 대외정책, 그중에서도 한반도정책을 주도하는 고이즈미 총리-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아소 다로(生太郞) 외상 3인방의 혈통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답은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고이즈미의 할아버지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郞)는 1920년대에서 45년 종전(終戰)까지 중의원 부의장과 체신대신(大臣)을 지냈다. 그는 태평양전쟁의 원흉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만든 익찬(翼贊)정치연맹 소속으로 도조의 전쟁 수행을 적극 지원했다. 익찬정치는 일본형 전체주의와 포퓰리즘 정치의 핵심이었다. 고이즈미 마타지로는 쇼와(昭和) 파시즘의 중심에서 활동한 정객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 역시 익찬회 소속 중의원 의원이었다. 종전과 함께 마타지로와 준야 부자는 공직에서 추방됐지만 준야는 곧 정계에 복귀해 방위청 장관까지 지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다. 기시는 30년대 일본의 괴뢰국가였던 만주국을 지배하던 "2키 3스케"의 한 사람이다. 2키는 관동군 사령관 도조 히데키와 만주국 총무장관 호시노 나오키(星野直樹)이고, 3스케는 기시 노부스케 만주국 총무처 차장과 아이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만주 중공업 사장과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남만(南滿)철도 사장을 말한다. 조슈(長州) 출신 동향인 3스케는 "만주 3각 동맹"으로도 불렸다. 태평양전쟁 때 도조내각의 상공대신을 지낸 기시는 A급 전범으로 복역했지만 출옥한 뒤에는 정계에 복귀해 총리가 됐다.

아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조선인 근로자 학대로 악명 높은 규슈(九州) 이즈카(飯塚)의 아소탄광 가문 출신이다. 일본 후생성 자료에 따르면 아소탄광에서 혹사당한 노무자는 1600명이 넘고, 그중 절반이 작업 중의 사고와 감독관의 구타, 굶주림으로 죽거나 도주했다. 지금은 그의 동생이 아소탄광 사장이다. 아소 외상은 전후 일본의 초대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외손자로 더 유명하다. 요시다는 일본 군부가 만주를 장악한 30년대 펑톈(奉天.지금의 선양(瀋陽)임) 총영사를 지낸 사람이다.

우연히도 고이즈미-아베-아소 3인방은 30년대 군국주의 일본의 대륙 침략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정치인들의 후예들로 국가주의.민족주의의 유전자를 타고났다. 신사 참배와 역사 문제에 대한 그들의 발언을 보면 그들은 선대의 '업적'에 긍지를 갖고 일본이 아시아를 호령하던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것 같다. 2003년 아버지의 고향 가고시마의 지란(知覽)에 있는 가미카제 특공대 기념관에서 눈물을 뿌린 고이즈미에게 신사 참배를 중단하라는 요구가 통하겠는가. 그들에게 대륙 침략에 적극 가담한 선대의 비인도적.반인류적 행위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비현실적이다. 그들은 정신적.도덕적으로 선대(先代)를 뛰어넘는 데 필요한 세계관과 지성, 국제 감각을 갖춘 인물들이 아니다. 고이즈미가 총리 자리를 떠나도 아베가 후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독트린의 실천전략에는 이 3인방 같은 일본 정치인들에 대한 역사심리학적(Psycho-historical) 연구가 따라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