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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숨겨온 비밀 핵시설은 영변보다 두배 더 큰 '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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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 핵시설

영변 핵시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6·12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 내에서는 북한이 비밀 핵·미사일 활동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북한이 이제껏 숨겨왔던 제2의 핵농축 시설 ‘강성(선)’이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30일 북한이 핵탄두 및 관련 장비시설 은폐를 추구하고 있다는 내용의 미 국방정보국(DIA) 보고서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런 은폐가 가능한 이유는 북한이 그간 주장해왔던 것과 달리 농축 시설이 영변 외에도 하나 더 있기 때문이며, 미 정보 당국은 2010년 강성으로 알려진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의 존재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의 저명한 핵 안보 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도 5월 말 발간한 보고서에서 제2의 비밀 농축 시설이 ‘강성’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6월 7일자 6면 보도> 올브라이트 소장은 1990년대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이라크 핵무기 사찰관으로 일했으며, ISIS를 이끌며 꾸준히 북한의 비밀 핵시설을 추적해왔다.

 ◇2000년대 중반 이미 가동=ISIS 보고서에서 올브라이트 소장은 강성 시설이 영변보다 먼저 가동됐다고 결론내렸다. 그 증거로 우선 영변 핵시설에서 직접 일했던 탈북자의 증언을 들었다. “영변 시설에는 작은 원심분리기 조립장 한 곳이 있었을 뿐이며, 그 곳에서 이미 사전 조립이 된 상태의 부품을 받아 원심분리기 부품에 맞춰넣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방국가들의 감시 결과’를 근거로 북한이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원심분리기를 만들기 위한 부품을 조달해왔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2002~2003년 P2 타입 원심분리기 8000개~1만 2000개를 만들기에 충분한 관련 부품을 조달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군 소식통은 “북한은 초기에 파키스탄에서 원심분리기를 수입했고, 이를 분해해 연구한 결과 원심분리기 자체 생산이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북한이 2000년대 초반에 이렇게 많은 부품을 조달하고서도 과연 원심분리기 시설을 짓지 않았을까. 조달량을 봤을 때 북한은 이미 2000년대 중·후반에는 농축우라늄 생산이 가능한 수준의 시설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며 강성이 영변보다 먼저 지어졌다고 결론내렸다.

 영변보다 먼저 건설된 제2의 비밀 핵시설이 있다는 추측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고, 한·미 정보당국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영변 핵시설의 원심분리기는 2010년 북한이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공개하면서 처음 존재가 확인됐다. 당시 헤커 박사도 “막 건설된 원심분리기 1000여개를 목격했으며, 이는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서 “영변에 구축된 우라늄 농축 설비가 영변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만들어지고 실험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원심분리기 1만 2000개, 핵무기 44개 생산 가능=WP는 강성은 영변의 두 배 규모인 지하시설이라고도 보도했다. ISIS 보고서의 결론 역시 이와 비슷했다. 보고서는 “이미 여러 국가 정부, 특히 미국 정부가 강성을 면밀히 조사했다”며 “우리는 몇 년 전 인근 시설에서 일하던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처음으로 강성의 존재를 인지한 뒤 두 개 이상의 정부 소스를 통해 건물의 모양까지 확인했으며, 그 간 제2의 비밀 핵시설로 추정됐던 다른 어떤 곳보다도 신뢰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련국) 정부들의 추산’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강성에 있는 P2 원심분리기 규모는 6000개~1만2000개다. 영변은 최소 한 차례 이상의 확장을 거쳤으며, 현재 2000~4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ISIS 보고서는 ▶강성과 영변 시설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며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의 70%를 핵무기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26~44개로 계산했다. 70%를 조건으로 한 이유는 무기화 과정에서의 손실을 감안한 것이다. WP는 미 정부가 파악한 북한의 핵탄두 숫자가 65개라고 보도했는데, 이와 관련, 보고서는 “핵무기가 60개라는 추산도 있지만 이는 손실량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강성은 지명? 강선제강소?=강성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ISIS 보고서는 ‘Kangsong’이라고 표기하며 “위치는 특정하지 않는다”고 했고, WP는 ‘Kangson으로 알려진 시설’이라고만 표현했다.

 강성(강선)이 지명인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 다만 북한의 ‘천리마운동’ 발상지로 유명한 평안남도 남포시 인근의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내 제철소의 옛 이름이 ‘강선제강소’였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남포시 천리마 구역이 과거 강선 구역이었던 적이 있다. 이 밖에 북한 지역에는 강선이라는 지명이 많이 있으며 미 측에서 말한 강선이 어느 곳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통한 정보 소식통은 “미 당국은 비밀 농축시설 위치로 평북 구성시의 방현비행장 인근을 지목해 왔다”고 전했다. 방현비행장은 평산 우라늄 광산과도 인접해 있다.
이와 별개로 북한이 목표로 삼아온 ‘강성대국’의 ‘강성’을 뜻할 가능성도 있다. ISIS 보고서는 “강성 핵시설이 여러 개의 다른 이름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의 핵시설 은닉 의혹에 이어 미사일 공장 시설 확장 주장도 제기됐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산하 비확산연구센터를 인용해 “최근 위성사진들을 분석한 결과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함흥에 있는 미사일 제조공장 신축 건물의 외부공사가 마무리되는 모습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비확산연구센터 측은 “지난 4월에는 함흥 공장에서 새로운 건물이 보이지 않았는데 5~6월에 신축 공사가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센터에 따르면 이 공장은 일본과 괌 등에 있는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 외에도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탄두에 사용되는 대기권 재진입 부품도 이곳에서 만든다. WSJ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앞서 북한 전문매체인 38노스도 지난달 21일 촬영한 위성사진을 토대로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서 인프라 공사 속도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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