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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묘기 접전에 관중들 "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18일 오후 여자다이빙 플랫폼결승경기가 벌어지고 있던 잠실수영장.
스탠드를 가득 메운 4천여 관중은 중국의 허염매(17)와 미국의 「미셸·미첼」(26) 사이에 전개되고 있는 쫓고 쫓기는 백열전에 매료되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는 것도 잊고있었다.
총 8라운드의 연기를 펼쳐 얻은 종합점수로 우승자를 가리게 되는 이 경기에서 7라운드까지의 중간종합점수는 허가 3백76·47, 「미첼」이 3백76·20. 불과 0.27점의 종이 한장 차로 맞물려 있었다.
마지막 8라운드, 10번째 순서인 허가 준비해 놓은 연기는 난이도 2.9의 「뒤로 뛰어 L자로 구부린 후 2바퀴 반 돌기」(205B형), 바로 다음 차례인 「미첼」이 마련해 놓은 연기는 난이도 2.7의 「앞으로 뛰어 C자로 구부린 후 3바퀴 반 돌기」(107C형).
난이도가 높은 형은 일단 훌륭히 연기해내면 많은 점수가 보장되지만 그만큼 실수를 저지를 확률도 높아 자칫하면 난이도가 낮은 형을 택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과연 금메달의 영광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허는 침착하게 도약대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여드름투성이 얼굴의 단발머리 여고생.
그러나 그는 87월드컵 우승자이며 87 중국 랭킹 1위인 거물선수다.
그는 다른 많은 중국 선수가 흔히 그렇듯 체조나 쿵푸에서 다이빙으로 전향한 선수가 아니다. 10세 때 바로 다이빙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다이빙만 해오고 있는 정통파다. 이 때문인지 그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연기에는 좀 약하다.
그 대신 난이도 3미만의 연기에서는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힘차게 도약대를 박차고 공중으로 몸을 날린 그는 예고된 대로의 곡선을 완벽히 그려내며 마치 송곳이 거꾸로 떨어지듯 깨끗하게 물 속에 박혔다.
5명의 심판이 8.0 1명이 7.5, 또 1명이 7.0을 줬다. 68.73점.
대단히 높은 점수였다. 관중은 이제서야 2시간 가까운 대접전에서의 승자가 누군 지를 알겠다는 듯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미첼」도 미국인 응원단의 극성스러울 만큼 열렬한 성원 속에 도약대를 박찼다. 역시 완벽에 가까운 동작. 그러나 입수가 문제였다. 물 튀는 소리가 관중석까지 똑똑히 들렀다. 60.75점.
15년간의 다이빙선수생활을 마감하는 대회인 이번 올림픽에서도 지난 84년 LA올림픽에 이어 또다시 은메달에 그치는 불운의 순간이었다.
「미첼」은 지난해 고소공포증에 시달린바 있다.
이날 허가 마지막으로 펼친 연기 205B형보다 한바퀴 더 도는 207B형을 연습하다 잘못 떨어져 크게 다친 것이 원인.
플랫폼에서 잘못 떨어질 때 받는 충격은 3층 건물에서 떨어질 때 받는 타격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고소공포증은 다이빙 선수로서는 종착역에 이르렀다는 얘기.
이미 여자다이빙 선수로는 황혼기에 접어든 「미첼」이 그 중증과 싸워 이기고 10대 선수 못지 않은 정열로 힘든 훈련을 감수해온 것은 오로지 스포츠맨 최고의 영광인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애쓴 보람도 없이 또다시 2위. 전광판을 바라보는 「미첼」의 눈시울이 젖어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여자다이빙 플랫폼 우승을 놓고 전문가들은 당초 허·「미첼」외에도 전날 예선에서 1위를 차지했던 중국의 진효단, 유럽 챔피언인 소련의 「엘레나·미로시나」등이 각축을 벌일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불과 2라운드가 끝나면서부터 허와 「미첼」의 대결로 우승범위는 좁혀졌다.
「미첼」은 3, 4라운드에서 허를 추월, 선두로 나섰으나 5라운드에서 다시 선두를 뺏겼다. 점수는 2백45.43점-2백34.72점으로 10.71점 차이.
그러나 「미첼」은 6라운드에서 1.68점, 7라운드에서 8.76점을 차례로 보태 0.27점까지 따라 붙였던 것.
이날 경기는 승자와 패자의 사연을 부각시키며 관중으로 하여금 다이빙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게 해준 명승부중의 명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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