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가는 폼페이오…北 살라미 전술에 말려들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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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내각회의를 주재중인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회의에 참석한 폼페이오 국무장관. [UPI=연합뉴스]

지난달 21일 내각회의를 주재중인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회의에 참석한 폼페이오 국무장관. [UPI=연합뉴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진두지휘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6일쯤 방북할 예정인 가운데 중·러가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북한의 지연전술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핵무기 숨기기에 나섰다는 보도까지 나오며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첫 후속 회담을 앞둔 폼페이오 장관에겐 장애물의 연속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행 목표는 북한이 약속했던 조치 이행을 못박는 것이다. 6·12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미군 전쟁포로 및 전쟁 실종자 유해 송환과 관련, 미측은 나무로 된 운구함을 전달했지만 북측은 이후 절차나 계획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고 한다. 단 폼페이오 장관 귀국길에 유해 송환도 함께 이뤄지도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물’을 준비할 가능성이 있다. 미 독립기념일(7월4일)에 맞춰 유해가 송환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약속했던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와 관련해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구체적인 폐기 일시와 방법 등에 대한 북측의 확답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비핵화와 직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에서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이나 시간표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이어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한꺼번에 모든 조치를 하라는 것은 너무 무리”라며 일괄타결은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여 6·12 공동성명에 시간표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북한 비핵화를)서두르면 스토브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것과 같다. 이제 요리가 되고 있고, 당신들은 아주 만족하게 될 테지만 서두르면 안 된다”(6월27일노스다코다주 연설)고까지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폼페이오 장관이 로드맵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의 은닉 핵 프로그램 신고 및 검증과 관련한 초기조치 합의를 받아온다면 그래도 비핵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를 잘게 나눠 건건이 이행하는 살라미식을 받아온다면 앞으로 협상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국방정보국(DIA)은 6·12 북·미 정상회담 후 새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나서는 대신 핵탄두 및 관련 장비·시설 은폐를 추구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WP는 “DIA는 북한이 워싱턴을 속이고 핵탄두와 미사일, 핵 개발 관련 시설의 수를 줄이려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약 65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북한은 이보다 훨씬 적은 수의 핵탄두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수치를 들었다. 또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지금까지 영변 한 곳으로 외부에 알려졌지만, 미 정보당국은 지난 2010년부터 강성(Kangson)에도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으며 이곳의 농축 규모를 영변의 2배로 보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최근 북·중·러가 밀착하면서 대북 제재 전선에서도 균열 조짐이 엿보인다. 중·러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을 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언론 성명을 내려고 시도했다 미국의 반발에 막혔다.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담에서 제재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국이 반대하는 이상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러가 국경 통제 등 결의 이행을 허술하게 해 사실상 유엔 제재를 유명무실화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대북 협상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김정은에게 필요한 경제 협력이나 교류 모두 결국 제재 때문에 막혀 있는 것이라서 북한으로서는 단계적 제재 해제를 강하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제재를 해제해버리면 북한이 언제든지 판을 깰 수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끝까지 이를 내어주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지혜·윤성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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