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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KTX, 경기는 연금 아웃 … 전임자 지우는 당선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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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이 27일 인수위 도민참여센터 ‘경남1번가 개소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이 27일 인수위 도민참여센터 ‘경남1번가 개소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미국에선 한때 ABC란 표현이 유행했다. 풀어 쓰면 ‘Anything But Clinton’으로, ‘클린턴이 했던 걸 제외하면 뭐든지’란 의미다. 2001년 취임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설명하는 말이었다.

시도지사 인수위 만들어 권력 접수 #박남춘 측 “인천시 부채 5조 더 있다” #이재명 “남경필의 위탁사업 중단을” #오거돈, 부산 부시장 등 물갈이 예고 #송철호는 ‘울산판 적폐 청산’ 시동

7월 2일 광역단체장 취임을 앞둔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현역 단체장을 누르고 새로 지방권력을 잡은 더불어민주당 당선인들이 전임자의 정책을 뒤집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ABH(Anything But Hankook·한국당이 아니면 뭐든지)라 할 만한 상황이다.

인천에선 박남춘 당선인의 인수위가 최근 “인천의 부채가 기존에 발표한 10조1000억원이 아니라 15조원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금융기관 등에 갚아야 할 돈은 10조613억원이지만 2조2000억원에 이르는 인천경제자유구역 토지 비용 등 잠재 부채가 5조원가량 있다는 것이다. 유정복 시장과 박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에도 부채 감축 규모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4년 전 유 시장의 1호 공약이었던 인천발 KTX 개통 시점도 3년 늦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위 백수현 대변인은 “선거기간 중 2021년 개통으로 알려졌던 인천발 KTX가 2024년에나 개통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인천발 KTX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평택-오송 간 병목현상이 심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당선인 인수위가 갑질·적폐·무능 공무원의 도태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시청에선 유정복 시장이 임명한 주요 간부들이 대거 밀려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경기도 상황도 비슷하다. 이재명 당선인은 남경필 지사가 추진하던 월드컵스포츠센터 위탁업체 선정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계약 기간이 4개월 남았는데 3년간 위탁 운영할 업체를 급하게 선정하고 있다”는 이유다. 남 지사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던 청년연금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청년연금은 경기도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청년이 10년간 매월 30만원씩 적립하면 도에서 같은 금액을 더해 최대 1억원의 목돈을 마련해 준다는 내용으로 올해 시작된 남경필표 청년 정책이다. 이 당선인 측 관계자는 “남 지사가 추진하던 정책들을 전반적으로 리뷰하고 있는데, 청년연금 같은 정책은 대폭 수정되거나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인천과 경기도는 광역의회도 민주당이 완벽히 장악했기 때문에 앞으로 전임 단체장 색깔 빼기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1995년 지방자치제 도입 후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부산·울산·경남(PK)의 경우 변화의 폭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정책뿐 아니라 ‘사람 물갈이’가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유력하다.

실제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은 경제부시장에 유재수(54)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을 내정하면서 인적 쇄신의 신호탄을 쏴 올렸다. 서병수 시장이 임명한 김기영(56) 현 경제부시장은 취임한 지 6개월밖에 안 됐지만 거취가 불투명해졌다.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은 “지역주의·학연주의·혈연주의는 공정한 사회를 가로막는 적폐”라며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인 ‘적폐 청산’ 시동을 걸 태세다.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도 ‘문재인 벤치마킹’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 만든 국민 정책 제안 프로그램 ‘광화문 1번가’를 그대로 본뜬 ‘경남 1번가’를 만든 게 대표적이다. 특히 오거돈·김경수·송철호 당선인은 박근혜 정부가 확정한 김해공항 확장안을 거부하고 동남권 신공항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영남권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기초단체도 인수위 대거 등장=기초단체 당선인들도 인수위를 꾸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잡음이 생기고 있다. 민주당 후보가 처음으로 당선된 경남 거제시에선 변광용 당선인이 각계각층에서 위촉한 100명의 시민으로 인수위를 꾸렸다. 무보수인 데다 다양한 여론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라곤 하나 기초단체가 100명이나 되는 매머드급 인수위를 꾸릴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지자체장 인수위 운영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다. 다만 행정안전부는 광역단체는 20명, 기초단체는 15명 이내로 인수위를 구성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같은 민주당 당선인이지만 경남의 강석주 통영시장 당선인은 ‘당선인 1인’ 인수위를 꾸려 대조적이다. 강 당선인은 “3선 도의원을 지내면서 중요 현안을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인수위를 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북 김제시에선 민주당 소속 박준배 당선인이 23명으로 구성된 시장직 인수위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인수위원 일부가 지역에서 건축업·인쇄업 등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시청 주변에선 “시가 발주하는 사업과 연관된 인수위원들에게 공무원들이 업무 보고라는 형식으로 사업 기밀을 알리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제시 관계자는 “인수위원에게 이권을 챙겨 주려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권호 기자, 창원·김제=위성욱·김준희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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