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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연금 노리고 20살 연하와 결혼한 90대 할머니

중앙일보

입력

유족에게 주어지는 산업재해 연금을 타내려 배우자 사망 3일 전 ‘허위 혼인신고’를 한 90대 여성이 연금 지급이 거부되자 소송까지 냈지만 패소했다. [중앙포토]

유족에게 주어지는 산업재해 연금을 타내려 배우자 사망 3일 전 ‘허위 혼인신고’를 한 90대 여성이 연금 지급이 거부되자 소송까지 냈지만 패소했다. [중앙포토]

20살 연하 남성과 혼인신고를 한 90대 여성의 연금 지급 소송이 ‘허위 혼인신고’로 거부당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심홍걸 판사는 이모(91ㆍ여)가 “장해연금 차액 일시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장해연금은 산업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장해를 얻었을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지급되는 연금이다.

이씨는 2016년 8월 정모(사망 당시 68세)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정씨는 혼인신고를 하고 3일 후 사망했고, 이씨는 배우자 자격으로 정씨가 받던 장해연금 잔금을 일시급으로 지급받겠다는 청구를 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혼인신고만 했을 뿐 두 사람이 실제로 결혼생활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남편과 사별한 이씨는 슬하에 7명의 자녀를 둔 상태에서 2012∼2013년쯤 사위의 소개로 20세 연하인 정씨를 알게 됐다. 정씨는 2007년 부산 해운대의 건물 증축공사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뒤 두 다리를 잃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장해등급 2급을 결정 받아 장해보험연금을 받아오고 있었다.

이씨는 정씨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위의 권유를 받아들여 정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혼인신고를 할 때쯤 정씨는 불안 증세를 보이고 횡설수설하는 등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법정에서 이씨는 “독실한 종교인으로서 정씨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병활동을 도와주면서 산재급여로 공동생활하면 쌍방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혼인신고를 했다”며 배우자로서 산재급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정씨와 참다운 부부관계를 설정하려는 의사가 없음에도 사위 등이 산재보험급여를 실질적으로 이용하게 할 방편으로 혼인신고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씨의 나이가 정씨보다 무려 20세가 더 많은 점, 정씨가 전 부인과 이혼신고를 한 날로부터 9일 만에 혼인신고가 이뤄진 점, 그로부터 3일 만에 정씨가 사망한 점, 정씨를 알게 된 후 별다른 교류가 없다가 갑자기 혼인신고를 한 점, 혼인신고 당시 정씨의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정씨와 이씨의 혼인을 주선한 것도 정씨가 사망하면 이씨를 통해 산재보험 급여를 이용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사위는 산재급여를 이용할 목적으로 혼인을 주선했고, 이씨는 이에 응해 혼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다면 이씨의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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