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선수들이 주역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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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88서울올림픽개막을 불과 4일 앞두고 생각나는 것이 있다.
지난 81년 9월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에서 서울이 일본의 나고야 (명고옥)를 누르고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 권을 획득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7년 전 일이다.
투표를 얼마 앞둔 상태에서「나고야 유리」 가 대세였기 때문에 서울결정은 나로서도 뜻밖의 결과였다.
투표결과는 52대27의 큰 차였다. 야구로 말하자면 9회 말 열세이던 서울 팀이 나고야 팀에 대 역전승을 거둔 것이라고나 할까.
나는 당시 일본체육협회 출입기자로 투표개시 4, 5일전까지 나고야 승리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 예정 기사도 「나고야 결정」폭으로 써놓았었다.
그러나 투표 2, 3일전 서울의 반격 정보가 입수돼 다시「서울 결정」쪽의 예정 기사를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서울의 승인은 대회유치를 위한 열의가 제1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국민들이 범 국가적으로 올림픽 성공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이 말이 맞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밖에 「올림픽의 원점」이라 할 수 있는 『올림픽 개최는 각 나라가 돌려가며 한다』 는 원칙이 서울 승리의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고야 아닌 서울을 개최지로 정한 IOC 결정은 옳은 것이었다. 나고야는 동경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 째로 개최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되면 신선미가 없다는 견해가 유력했다.
이에 비해 서울은 여러 가지로 여건이 좋았다. 『일본 이외의 아시아 도시에도 올림픽 성화를!』이라는 서울 측의 호소가 IOC위원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그로부터 7년, 그 동안 한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심지어 올림픽 개최가 무산되리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북한은 예상대로 서울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다. 공동개최·분산개최를 주제로 IOC가 중개역을 맡아 지금까지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했으나 성과 없이 끝났다.
북한의 소위 공동주최는 일방적인 주장이다. 서울은 IOC헌장에 따라 일단 개최 권을 획득했다. 그 권리를 나중에 와서 나누어 갖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다. 억지로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불참 구실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남북문제는 잘 모르겠다』 고 나중에 술회한 것은 수긍이 가는 얘기다.
이번 서울올림픽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참가, 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12년만에 동서 양 진영이 서로얼굴을 맞대는, 실로 오랜만에 5개의 바퀴 (오륜) 가 한데 맞물리는 올림픽 역사상 기념할만한 대회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측이 보여준 노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올림픽공원 안에 모여있는 각종 경기시설은 훌륭하다. 국위를 건 한국의 자세가 엿 보인다. 오늘의 일본에서는 이만한 시설을 한곳에 모아 세우는 것은 아주 어렵다.
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도 사막의 가운데에 호화로운 경기시설을 만들었지만 이번의 서울대회는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실내 수영장은 수심을 조절할 수 있는, 세계에서도 예가 없는 것으로 선수들로부터도 호평을 받고 있다. 시설 면으로만 말한다면 사상 최고라 할 수 있다.
나는 76년 몬트리올올림픽도 취재한 적이 있다. 뉴질랜드 럭비 팀의 남아연방원정에 항의해 아프리카 지역이 보이콧했을 뿐 아니라 적자 올림픽이 되고 말았다.
시설공사 노동자들의 파업, 막대한 경비 등으로 공사가 지체되어 일부 미완성인 채로 대회를 치렀다.
적자는 시민부담으로 되돌아오고 거대한 올림픽이 지닌 단점의 일면이 드러났다.
이러한 점에서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서울 올림픽은 TV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재정적인 불안을 해소했다. 국민의 부담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V방영 권이 경기 스케줄조차 변경시킨 측면은 간과할 수 없다. 미국시간에 맞추어 오전중의 결승이 많아져 선수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올림픽의 주역은 선수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SLOOC)도 이와 같은 면에서는 배려가 부족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큰 문제점은 언어장벽이다. 일본 기자단이 모였을 때 화제가 된 것은 단연 두 가지 점이다.
다른 외국 기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부부족도 있지만 한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말을 못하는 많은 외국기자들은 서울에 들어오면 모두 어린아이가 된다.
언어문제 이외에 교통문제가 있다. 택시 잡기가 어렵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합승을 하려해도 택시 잡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밖에 SLOOC에서의 확인작업도 상당히 어렵다. 전화를 해도 『여기서는 모른다』 는 대답이다. 전화를 차례로 걸어 최종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기자 촌에서의 문제점이지만 세탁기가 없기 때문에 내의 류의 세탁에 곤란을 겪고 있다. 기자 촌 내의 세탁비가 시내의 약 4배인 것도 덧붙여 밝혀둔다.
공산주의가 싫어 양친과 형제를 남겨두고 북한에서 한국으로 내려왔다는 초로의 택시운전사는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으로 한국이 어디에 있는가가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면서 올림픽 개최의 효용하나를 말했다.
대회는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올림픽 후다. 거대한 경기시설의 관리· 활용문제도 그렇고,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는 한국전체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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