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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렌징, 토너, 에센스, 로션등 4~5단계 쓰는 한국 남자들 대단"

중앙일보

입력

2005년 광고 대행사에서 일하던 30대 영국인 남성 사이먼 더피는 아내와 쇼핑을 나섰다가 직업을 바꾸게 됐다. 자연유래 성분의 남성 화장품을 고르려 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던 그는 남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성분도 좋은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결심에 이듬해 사업 파트너와 함께 화장품 회사 '불독'을 만든다. 충직한 불독처럼 남성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자는 결심을 이름에 담았다.

영국 화장품 '불독' 최고경영자 사이먼 더피 인터뷰

영국 최초의 남성 전용 화장품을 표방하며 2007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불독은 로레알과 니베아에 이어 현재 영국 남성 화장품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한다. 해외에도 진출해 25개 국가 50000 여개 매장에서 판매한다. 대표 상품 ‘오리지널 수분크림’은 전 세계에서 15초에 하나 꼴로 팔리는 베스트셀러다.

불독의 연 매출은 6500만 달러(약 723억원)로 이 가운데 10%는 한국에서 나온다. 6년 전 한국에 진출해 올리브영을 통해 판매하는데 국내 브랜드를 제치고 남성 로션과 클렌저 부문에서 판매 1위다.

불독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사이먼 더피를 지난 12일 서울 CJ올리브영 본사에서 만났다. 더피 CEO는 ”한국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해외시장”이라며 “한국 남성은 자신을 꾸미는데 익숙하고 스킨케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말했다. 실제 영국 런던의 불독 본사는 한국 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제품 혁신팀을 따로 두고 있다.

영국 남성화장품 불독 창립자인 사이먼 더피 대표가 서울 중구 올리브영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영국 남성화장품 불독 창립자인 사이먼 더피 대표가 서울 중구 올리브영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대형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짰나.

남성에게 초점을 맞췄고 성분에도 승부를 걸었다. 가급적 자연 유래 성분을 사용하려 애썼다. 패키지도 차별화했다.

패키지는 어떻게 다른가.

일단 선반에서 눈에 띄는 게 중요했다. 기존 남성용 화장품은 검은색이나 파란색, 회색 위주인데 굉장히 지루하지 않나. 마치 학교에서 ‘남자라면 그런 색을 써야 해’라고 교육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흰색 용기를 택했다. 제품 설명도 최대한 간결하고 단순하게 적었다. 최근엔 사탕수수로 만들어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용기와 재생 잉크를 포장에 사용하고 있다.

화장품을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하는 것이 상술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남자와 여자의 피부는 확실히 다르다. 남자는 여자보다 피부가 두껍고 기름지고 모공도 많고 수염이 나서 다르게 관리해야 한다. 환경적인 면에서도 남성이 보통 음주와 흡연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피부 노화 속도와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나라마다 남성 화장품 사용에 차이가 있나.

분명히 있다. 2014년 진출한 태국의 경우 덥고 습하다 보니 수시로 얼굴을 씻더라. 그래서 세안제 같은 제품에 대한 선호가 높다. 스웨덴은 추위가 심해 립밤이나 크림 수요가 많다. 피부를 가꾸는 개념보단 추위나 바람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영국 남성화장품 '불독' 창립자인 사이먼 더피 대표는 클렌징 후 토너로 닦아내는 등 화장품 사용 단계가 많다는 점을 한국 남성 소비자의 특징으로 꼽았다.장진영 기자

영국 남성화장품 '불독' 창립자인 사이먼 더피 대표는 클렌징 후 토너로 닦아내는 등 화장품 사용 단계가 많다는 점을 한국 남성 소비자의 특징으로 꼽았다.장진영 기자

한국 남성은 어떤가.  

가장 독특한 점은 단계별로 쓰는 화장품이 많다는 점이다. 영국이나 다른 지역에선 세수하고 로션 바르면 끝인데 한국은 클렌징, 토너, 에센스, 로션 등 최소 4~5단계를 거치더라. 특히 남성들이 클렌징 이후 토너로 한 번 더 닦아주는 건 다른 지역에선 보기 힘든 특징이다. 원래 없던 토너 제품을 새로 만든 것도 한국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해서다. 발랐을 때 매끈하고 보송보송한 느낌을 선호해서 오일 컨트롤 제품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많이 팔린다.

한국에선 요즘 선크림은 기본이고 메이크업을 하는 남성도 늘고 있다.

내가 느끼는 가장 흥미로운 특징 가운데 하나다. 올리브영 강남 쪽 매장을 갔더니 남성 고객들이 비비크림도 발라보고 눈썹도 그리면서 남성용 메이크업 제품을 고르더라. 영국에도 간혹 화장에 관심 있는 남자들이 있지만, 전용 제품이 없을뿐더러 대부분 여성용을 산다.

한국에서 실패한 제품은 없나.  

한국에선 수염을 기르는 남자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매일매일 면도를 하는 것 같다. 영국에선 매일 면도하는 남자가 전체의 20% 정도밖에 안 되고 대다수가 수염을 두껍게 기른다. 그래서 수염 전용 샴푸나 밤, 오일이 유럽에선 굉장히 잘나가는 제품군인데 한국에선 찾는 사람이 없어서 초기에 들여놨다가 뺐다. (웃음)

왜 한국 시장에 공을 들이나.

한국은 남녀를 불문하고 화장품에 대한 트렌드를 주도하고 혁신을 이끄는 곳이 됐다. 한국에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시도를 해서 성공하면 다른 나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마스크팩 사용이 대표적인데 한국의 영향을 받아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이제 막 붐이 일고 있다.

앞으로의 그루밍(남성이 자신을 꾸미는 것) 산업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추세가 전통적 남녀 구별을 넘어서 남성들도 다양한 화장품과 패션을 시도하는 환경이 됐기 때문에 기초뿐 아니라 남성 메이크업 제품도 확대될 것이다. 요즘 유럽에선 ‘펜티 뷰티(Fenty Beauty)’ 라는 브랜드가 인기인데 다양한 피부색을 반영한 새롭고 다양한 컬러를 내놔 주목받고 있다. 그루밍 분야에서도 색상이나 성분이 다양해지는 이런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영국 남성화장품 '불독' 창립자인 사이먼 더피 대표는 "한국은 남녀 불문하고 세계 화장품의 트렌드와 혁신을 주도하는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한다. 장진영 기자

영국 남성화장품 '불독' 창립자인 사이먼 더피 대표는 "한국은 남녀 불문하고 세계 화장품의 트렌드와 혁신을 주도하는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한다. 장진영 기자

중국 진출 계획은 없나.

규모로 따지면 굉장히 매력적인 시장인데 동물 실험 문제 때문에 아직 진출 못 했다. 중국에선 외국에서 만든 화장품은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이어야 진입할 수 있는데 우리는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다. 최근 규제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 기다리고 있다.

강나현 기자 kang.na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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