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외건설도 ‘주52시간’ 묘수 없나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7면

이집트에서 근무 중인 GS건설의 김모 부장은 다음 달부터 연간 60일까지 휴가를 쓸 수 있다. 그는 카이로 북쪽 20㎞에 있는 ERC 플랜트 건설현장에 파견돼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국내에선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를 적용하고, 해외에서는 3개월 단위로 근무시간을 조정한다. 탄력근무제는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 가능한데, 3개월 단위의 경우 노사 합의가 있어야 한다.

109개 국 1만6000명 새 근무제 적용 #GS건설, 공사장 따라 세 타입 나눠 #석 달 단위로 근무시간·휴가 조정 #대부분 업체 방침 못 정하고 “막막”

다음 달 1일부터 법정 근무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건설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사업장은 물론 해외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479개 건설사는 1만5791명을 109개 나라에 파견했다. 조성원 해외건설협회 부장은 “새 제도 시행으로 기존에 수주한 프로젝트는 수익성이 악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체들은 인력 충원도 만만치 않다. 절차도 복잡하지만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 중장기적으로 공사 효율성 저하→수주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GS건설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해외 사업장에 탄력적 근무시간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GS건설은 전 세계 80여 개 현장을 A·B·C의 세 가지 타입으로 나누고, 근무시간과 휴가일수를 달리했다. 공사 난이도가 높거나 위험 지역인 A·B타입은 3개월에 한번씩 각각 15일과 12일의 휴가를 준다. 이 회사는 A타입으로 이집트의 ERC 프로젝트와 오만·이라크의 사업장을, B타입으로 쿠웨이트·카타르 등을 지정했다. 같은 국가 안에서도 현장에 따라 타입이 다를 수 있다.

근무기간엔 주 6일 58시간 일한다. 회사는 점심시간 2시간을 보장하고, 모든 해외 사업장에 휴게공간을 제공한다. 이 방안대로라면 김 부장 같은 A타입 근무인력은 3개월간 638시간을 일한다. 3개월마다 15일씩 주어지는 휴가를 고려하면 법정 근무시간(676시간)을 넘지 않는다.

근무여건이 양호한 C타입에선 종전과 비슷한 4개월마다 15일의 휴가제를 유지한다. 싱가포르·태국·호주 등이 C타입에 해당한다. GS건설 관계자는 “노사가 합의한 세부안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일하는 문화를 혁신해 주 52시간제가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들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삼성물산은 이달부터 국내외 사업장에서 시차근무제, 잔업사전허가제 등을 통한 주 52시간제를 시행 중이다. 한화건설도 해외에서 조별 근무 등을 통한 주 52시간제를 할 방침이다. 대우건설은 탄력근무제, 추가인력 투입 등을 저울질 중이다.

주 52시간제 도입에 대해 “막막하다”고 하소연하는 건설업체도 많다. 한 대형건설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단속을 6개월 유예한다고 밝힌 게 대책이라면 대책”이라고 말했다. 제도 시행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사실상 ‘무대책’이라는 얘기다.

탄력근무제를 도입해도 현행 3개월 단위론 인력 수급이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공사기간이 임박하면 휴일·야간 등 돌관작업이 불가피하다. 계절과 날씨 영향도 받는다”며 “이런 현실을 고려해 건설업은 탄력근무제 적용 주기를 6개월~1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lee.sangaj@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