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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없는 성장]삼성전기 이익 1155% ↑, 고용은 고작 3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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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취업박람회. [중앙포토]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취업박람회. [중앙포토]

중앙일보가 매출액 기준 1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호황 업종은 고용 없이 성장을 이뤘고, 불황인 업종은 고용을 먼저 줄였다. 사업이 좋건 나쁘건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기·전자 부품을 만드는 삼성전기는 지난해 4년 만에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3062억원)이 1155%나 늘었다. 매출(6조8385억원)도 13.4%나 늘었다. 지난해 최초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용 인쇄회로기판(PCB)을 애플에 납품하면서다. 애플에 아이폰용 OLED 기판을 공급하는 업체는 삼성전기 등 3개사뿐이다. 게다가 주 거래처인 삼성전자의 갤럭시S8이 히트를 하면서 삼성전기의 듀얼 카메라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지만 이 회사의 근로자 수는 한해 전보다 3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업황 부진 업종에서는 대규모 고용 축소가 동반됐다. 장기간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조선업이 대표적이다. 현대중공업은 5년간 일자리가 1만 개 이상 감소(2만7246명→1만6504명, 사업 분할에 따른 분할사 전직 인원 포함)했다. 대우조선해양(-3072명·3위)·삼성중공업(-2866명·5위) 등 국내 조선업 빅3도 국내서 일자리가 가장 많이 감소한 5대 기업에 일제히 이름을 올렸다. 한진해운(-1935명)·팬오션(-1298명) 등 조선업의 전방산업인 해운업종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 박람회. [사진 현대차그룹]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 박람회. [사진 현대차그룹]

그나마 현대차그룹이 최근 5년간 채용을 가장 많이 늘렸다. 현대차그룹 6개 상장사가 5년간 늘린 일자리는 1만 명에 육박한다(+9993명). 특히 현대차(6만3099→6만8590명)·기아차(3만3576→3만4720명) 등 완성차 제조사 일자리가 많이 증가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단체교섭에서 2021년까지 3500명의 비정규직을 특별고용하는 방안에 합의한 바 있다. LG그룹(+7650명·7개 상장사 기준)도 같은 기간 일자리가 크게 증가했다.

국내 100대 기업의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효율성 추구에 성공한 기업은 100대 기업으로 살아남고, 고비용 구조를 안고 가는 기업은 경쟁에서 아웃됐다는 의미”라며 "제조업에서 효율성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매출도 늘고 고용도 늘었다면 삼성전자가 지금의 효율성을 갖출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고용 없는 성장보다 '성장 없는 고용'이 훨씬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구조 고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2000년대 IT 산업의 대두로 글로벌 시장의 경쟁이 격화된 결과 제조 기업이 인건비 중심의 고정비를 줄이고 내부 자산을 유보하려는 경향이 커졌다”며 “한국 외에도 미국과 일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채용박람회 구직 행렬 [중앙포토]

채용박람회 구직 행렬 [중앙포토]

개별 기업의 고용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지속성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의 숫자가 늘어나는 게 고용 해법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성태윤 교수는 “고용 효율화로 성장 기반을 갖춘 회사가 더 많이 등장하면 국가 경제 전체의 고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100대 기업에 준하는 회사가 200개, 300개로 늘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또 “이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건 정부의 재정 지원이 아니다”며 “정부는 고용 구조의 유연성과 규제 합리화로 기업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근 교수도 “100대 기업의 성장이 아웃소싱을 통한 연관 기업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면 전체 경제가 선순환됐다”며 “대기업이 스타트업 기술과 협업을 시도하는 등 100대 기업과 연결된 산업 플랫폼이 활성화되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경직된 노동시장이 고용을 악화시키고 임금 분배를 왜곡하지는 않는지 정책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람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고용을 늘릴 수 없게 되니 내부적으로 임금 분배 구조가 상위에 집중되는 문제가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고용감소40

고용감소40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겪은 일본 등 경쟁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위 교수는 “일본은 엔화 약세를 내세워 수출을 늘리는 등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전통산업을 첨단산업으로 바꿔놓는 산업의 구조조정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문희철·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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